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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소통

지금 찬란한 이 순간을 - 충현도서관에서 열린 <이주은 저자초청강연회>

 

 

 

 

 

 


에리크 베렌스키올이 1890년에 그린〈기억〉이라는 그림을 보자.

 

(이주은 교수님 자료 제공)

 

실내에 두 여인이 앉아 있다. 한 여인은 창밖에 시선을 둔 채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그녀는 과거의 추억이라도 더듬고 있는 걸까?

아니면 창 너머에 펼쳐져 있는지도 모를 환상의 세계, 욕망의 세계를 꿈꾸고 있는 걸까?

반면에 다른 여인은 눈을 감고 바깥을 외면하고 있다.

그녀에게 바깥세상이란 너무나도 빨리 변화하기에 적응하기 어려운 곳, 심리적으로 상실감만 안겨주는 곳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여인은 눈을 감고 자기만의 세계에 숨어버린 모습은 아닐는지...

 

100여 년 전 두 여인의 모습 위에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 닮은꼴로 겹쳐진다.

 

숨 가쁘게 달려오다 보니 어느새 계절은 바야흐로 깊어가는 가을이다. 잠시 숨 고르기를 하며 추억을 건져 올리기 좋은 날, 충현도서관에서 열린 <이주은 저자초청강연회>를 가보았다. 충현도서관에서는 올 한 해 힐링을 주제로 한 강연회를 연속으로 진행하였는데 이번 강연도 그림을 통해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삶을 풀어보려는 것이었다.

 

 

 

 


빨간 장교 복을 입고 온 인형 같은 모습의 이주은 건국대 교수는 최근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이주은의 벨 에포크 산책’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은 100여 년 전 유럽의 ‘벨 에포크La belle epoque’ 시대를 그림과 소설로 재조명한 책이다.

 

요즘 우리나라 30대 후반들에게 IMF 이전의 좋았던 시절,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이룩했던 풍요의 그 시절에 대한 회고가 유행이었다.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말 뜻 그대로 19세기 말 20세기 초, 짧지만 완벽하고 화려했던 ‘벨 에포크’ 시기가 유럽에선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 ‘벨 에포크’ 시기는 과학의 발전과 산업화로 인해 현대적인 라이프스타일이 폭발적으로 나타난 시기이며 동시에 지금 현대인들의 고민 원류가 흘러나오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주은 교수는 <기억>이라는 위의 그림이 이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내면을 가장 잘 말해준다고 보았기에 자신의 낸 이번 책의 표지로 썼다고 했다. 한 장 한 장 그림을 띄워가며, 또 당대의 소설을 동원해가며 이주은씨가 재현해본 ‘벨 에포크’ 시대는 과연 어땠을까? 그 무렵은 영화, 기차, 자전거, 바캉스, 백화점 그리고 도시의 화려한 불빛의 등장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화가 밀려오던 시기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말초적인 구경을 찾아 헤매는 군중들, 환상을 꿈꾸는 마담 보바리들, 욕망의 소비자인 쇼핑객들, 완벽한 차림새로 예술처럼 살고자 했던 댄디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이 느꼈을 일상적인 상실과 공허, 불안감은 21세기를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의 내면 풍경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미하일 브루벨이 그린 1890년에 그린 작품 <앉아있는 악마> (이주은 교수님 자료 제공)

 

게다가 19세기에는 서구를 오랫동안 지탱했던 기독교적인 가치관이 무너지고 있었다.

선과 악의 구분, 미와 추의 구분이 사라진 모호하고 혼란스럽기만 한 상태에서 당대인들은 ‘진정 나는 누구인가?’ 를 고민하였을 것이다. 미하일 브루벨이 그린 1890년에 그린 작품 <앉아있는 악마>라는 그림은 바로 당대의 고민하던 자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제임스 티소의 1874년에 그린 <선상무도회> (이주은 교수님 자료 제공)

 

그렇다면 과거로 도피하지도 않고, 내일이라는 희망을 가장한 욕망에도 휘둘리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미래를 구성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사건이 아니라 오늘 하루하루의 소소함이듯이 말이다. 

제임스 티소의 1874년에 그린 <선상무도회>라는 그림은 내일이면 사라질 것이기에 더 소중한 오늘 한순간 일상의 장면을 잘 잡아내고 있다.  이주은씨의 강연은 시대와 그림과 소설을 아우르는 종횡무진의 것이었다. 벨 에포크 시대를 알기에는 두 시간 강의는 너무도 짧았다. 그렇지만 흘러갔어도 여전히 그립고 아름다운 한 시절에 대한 공감의 파장이 참석자들 가운데 퍼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강의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가을 햇살이 찬란하다. 강연자가 결론으로 말했듯이,

 

 

 

 

글·사진 | 바다연꽃(옥연희)

온라인 시민필진 3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