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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소통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를 듣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이다.

광명시에서는 2015년 매월 문화가 있는 날에 맞추어 철산도서관 6층 강당에서

 인문학 콘서트를 연다.



 

 

7월 29일 수요일 오후 7시.

7월의 인문학 콘서트가 열리는 시간.


오늘의 주제인 '낭송으로 만나는 열하일기'를 만나기 전에

클래식 음악으로 부드럽게 콘서트의 문을 연다.

플룻, 오보에, 호른 3개의 악기로 연주되는 음악들은 귀에 익은 무겁지 않은 클래식들이다.


 

 

 

 


목관 5중주에 쓰이는 플룻, 클라리넷, 오보에, 바순, 호른 5개의 악기 중

플룻, 오보에, 호른 3개의 악기로만 연주한다.

독특한 구성인데 소리가 잘 어우러져 듣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각각의 악기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각 악기의 독주가 이어진다.

목관악기의 소프트한 음색의 정수를 보여주는 플룻으로는 바흐의 미뉴엣을 독주했고,

묵직하고 깊이있는 소리가 매력적인 오보에로는 영화 '미션'의 OST '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연주했다.

우리가 흔히 '넬라 판타지아'라는 곡명으로 알고 있는 이 곡은

오보에 연주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금관악기이면서 목관합주에 참여하는 호른으로는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연주했다.



 

 

 

 

그리고 이어서 엘가의 사랑의 인사, 엘 콘도르 파사(철새는 날아가고),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OST 중 'UNDER THE SEA' 등을 합주하며

오늘 콘서트의 첫 페이지를 아름다운 선율로 열어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의 본론인 열하일기를 '낭송으로 만날' 시간이다.

길진숙 인문학연구원의 해설로 진행하는 이 날의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젊은 청년 두 사람이 나와 낭송을 한다.



 

 

 

 

 

열하일기의 두 대목인데

'유리창에서 지기를 기다리며', 그리고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라는 문장으로 유명한

서화담과 눈을 뜬 장님간의 대화하는 대목이다.


연극적인 요소가 가미한 낭독은 자칫 딱딱한 강의가 되기 쉬운 고전문학의 서두를

위트 있게 풀어주는 역할도 한다.

 

 

 

 

 

 

두 청년의 깨끗하고 우렁찬 낭독이 끝나고 나서

강연자는 고전을 읽을 때는 무조건 낭독을 하기를 권했다.

 

문장가마다 사상가마다 자신의 문체가 있게 마련이고 그 문체는 언어의 리듬이 되기 때문에

소리 내어 낭독을 하게 되면 그 문체의 리듬을 타게 되고

그리하면 훨씬 더 재미있는 고전 읽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고전을 읽는 즐거움을 배가 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담한 체구에 똑 떨어지는 발음으로, 시원시원한 음성으로 말하는

강연자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훅훅 들어온다.

이것도 낭송으로 다져진 그의 목소리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관객들은 강연 내내 잠시도 한 눈을 팔 수 없을 만큼 재미있는 강연에 빠졌다.


 

 

 

 

 

 

시대의 파격을 즐긴 남자 연암 박지원


강연자가 들려주는 연암 박지원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본다면 파격을 즐긴 사람이었다.

틀에 박힌 공용문은 죽은 글, 가짜 글이라고 평하면서 글자만 보는 것은

쥐오줌, 쥐똥을 모으는 일이고, 문장에 영혼을 싣지 못하고 글자만 답습하는 것은

술찌꺼기를 잔뜩 먹고 취해 죽는 것이라고 일갈한다.

누군가 글을 썼는데 그 글로 누구 한사람 아프게도 못하고,

심장을 건드리지도 못한다면 그 얼마나 헛된 것이겠냐고 말하는 것에서

그의 글과 문장에 대한 철학이 엿보인다.

아마도 요즘 청년들이 죽어라 작성하는 개성 없는 자소서나 입시용 논술을 본다면

모두가 죽은 문장이라고 크게 호통을 쳤을 것 같다.


그는 그렇게 기존의 문장체를 거부하며 고문체와 소품체를 종횡무진 오가는 문장을 구사했고,

그것은 곧 연암체로 불리며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다.

그는 44세까지 자발적(?)인 백수의 생활을 했기에 출세나 입신양명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세상 사람들에게 그는 이미 문장가로서 널리 이름이 알려져 있었는데,

또한 그는 휴식의 중요성에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일을 너무 열심히 하면 사고가 굳는다.

조직에 있지 않고 주류에서 벗어나 있어야 비로소 다른 것이 보인다'


근면을 매우 중요한 삶의 덕목으로 꼽는 유교적 철학이 사회를 지배하던 당시에

지나친 근면을 경계하며 적당한 휴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그는 문장의 파격 뿐 아니라

생활철학에서도 파격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그가 야근과 야자를 강요하는 요즘의 대한민국을 본다면

또 어떤 호통을 칠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 든다.

 


 

 



자발적 백수, 44세에 떠난 여행에서 걸작 '열하일기'를 남긴다.


사회의 주류에 편입하지 않고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표출하며 지내던 44세의 어느 날,

청나라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에 지인의 소개로 비공식 수행단원 자격을 얻어

중국을 방문할 기회를 얻는다.

청나라의 가장 융성한 문화를 꽃피웠던 강희제-옹정제-건륭제시기에 그 곳을 가 보게 된 것이다.


그를 포함한 사절단은 압록강을 건너 청의 황제가 기거하는 자금성이 있는 북경까지 갔으나

유난히 여행을 즐겼던 건륭제는 마침 황제의 여름별장인 열하지방에 가 있었다.

북경에서 북동쪽에 위치한 열하지방은 온천이 많아 강물이 얼지 않는다고 해서

열하(熱河)라는 불리는 곳으로 현재는 하북성 승덕 지방이다.


청 황제를 만나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 요동을 지나 북경(연경)을 거쳐 열하지방까지 다녀오는 왕복 여정을 글로써 남긴 연암의 기행문이 바로 '열하일기'다.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블로그

http://blog.naver.com/skkup/70142438367

 


 

그러나 열하일기는 단순한 여행기만은 아니다.

여행하며 듣고, 보고, 느낀 것들을 꾸밈이나 미화 혹은 더하거나 빼는 행위 없이

솔직한 화법으로 써 내려간 시대적 철학서이며, 비평서이며, 소설이기도 하고, 기록물이기도 하며,

연암의 개인적인 일기, 즉 수필이기도 하다.


압록강을 건너 요동 땅에 도착했을 때의 감동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크게 한바탕 울어 만하다"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진 요동벌판에서 우주의 심원에 가 닿은 느낌이라고도 했는데,

드넓은 요동벌판에 첫 발을 내디딘 그는 답답한 엄마의 자궁에서 방금 빠져나온

신생아의 느낌이었는지도 모른다.

자궁 속에서 답답하게 웅크려 있던 아이가 밝은 세상으로 나오자마자

온 생명력을 다하여 우는 것처럼,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진 요동벌 한복판 이야말로

세상이 흔들릴 정도로 우렁찬 울음을 울어도 될 만한 곳이라고 느낀 것은 아닐까.

그는 당쟁으로 얼룩지고 있는 18세기 조선의 비좁은 현실이 마음 아팠을지도 모른다.


연암은 새롭게 접하는 모든 것 하나하나에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며 관찰했지만

결코 청의 부유함이나 화려함에 눈을 둔 것이 아니었다.

조선을 벗어나 청으로 접어들면서 그가 가장 주목하고 놀란 것은

일반 백성의 청결한 주거환경이었는데 그것은 곧 민초들의 삶의 구석구석에 미치고 있는

중앙정부의 행정력에 대한 놀라움과 같았다.

비록 빈부의 차가 있어 가난하게 사는 자라 하더라도 구석구석 편리하게 사는 모습을 바라보며

변방지역까지 두루 갖춰진 정교한 정치시스템에 감탄한 것이다.

그는 이것을 형식주의가 아닌 실용적인 정치를 통해서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가난한 백성이라도 큰 불편을 겪지 않으며 사는 사회가 바른 사회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요즘의 개념으로 생각해보면, 일반 서민들도 잘 살아야 한다는

보편적 복지의 개념을 떠올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연암은 열하일기에서 중국 최고의 볼거리는 '기와조각과 똥덩어리'에 있다고 말한다.

고관대작의 저택 지붕에 올려진 화려한 기와가 아니라, 비가와도 질척이지 않고

 패이지 않는 단단하고 매끄러운 길을 닦는데 쓰는 깨지고 쓸모없었던

기와파편과 마차를 끄는 말이 길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말과 마차 사이에 삼각형의 받침대를 매달고 다니면서,

거두어진 말똥을 연료나 퇴비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며 연암은 이 두 가지가

중국의 체계적이고 효율적이며 세련된 행정 시스템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박지원은 지금까지 오랑캐의 나라라고만 여기던 청의 힘과 능력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당시만 해도 조선은 이미 멸망한 한족의 나라 '명'만을 자신들이 섬겨야 할 상국(上國)으로 여기고,

조선은 소중화(小中華)라 하여 한족의 중화사상을 가장 잘 계승하는 후손이라는

사대주의적 의식이 뿌리 깊었기에 만주인이 세운 나라인 '청'은 야만인의 나라라며

은근한 멸시를 하던 터였다.

청이 가진 힘이 강하기에 드러내어 적대시 할 수는 없지만

조선의 속내는 청은 야만족의 나라라서 배울 점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태도는 청 황제의 생일 축하 사절단으로 가는 자리에서도 은연중에 나타났으며

연암은 그런 조선의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폐단에 대해 오히려 비웃음을 날린다.


그리고 문화란, 문명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한다.

- 지금까지 생각한 중화사상이 반드시 옳기만 한 것일까.

- 우리가 이방인이라고 부르며, 오랑캐라고 말하고 괴상한 행색을 한 그들을 보고

우스워 하듯이 저들이 보기에 우리는 또 얼마나 이상스럽고 괴상한 존재이겠는가.


자기의 틀에 갇혀서 다른 것을 보지 못하며, 다른 것이 옳을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 앞에서 예를 다하지 않고 따라서 다른 것이 하는 말을 듣지 못하니

결국 그것을 이기지 못한다고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어느 한 문화, 어느 한 문명만 옳은 것이라고 고집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를 생각하며, 연암은 당시의 시각으로는 하기 힘든 생각, 즉 문화의 다양성에 대해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것을 접하고 받아들이며 습득하게 된 열린 지식으로

어쩌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에 들뜨곤 하지 않았을까.

그는 그러한 것들을 현미경과 같은 시선으로 살폈고, 카메라보다 정교하게 글로써 묘사하고 있다.

 

 

 

 

 


 

 

탈권위적이어서 오히려 위험한 인물


그러나 열하일기가 정말로 재미있는 책인 이유는 어쩌면 다른 것에 있다.

날카롭고 자기 성찰이 뚜렷한 글은 좋은 글이긴 하지만 재미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열하일기는 재미있다.

그가 중국에서 사절단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친구들에게 열하일기의 초고를 보여줬을 때

사람들은 그의 글이 너무나 재미있어 포복절도를 했다고 한다.

생생하고 입체적인 표현력을 갖춘 문장도 문장이거니와 그의 지나치리만큼 솔직한 묘사가

글의 무게를 아주 많이 덜어내기 때문이었다.

사절단 일행 중 조금 약삭빠르지 못한 한 사람을 두고 사람들이 놀려먹던 에피소드나

실내에서 독한 방귀를 뀌어서 벌어진 일화 등이 여행기에 그대로 실려 있었고,

잠 한 숨 자지 못하고 북경에서 열하까지 무박4일간의 강행군 끝에 열하에 도착해서

천일 하고도 하루를 더 계속해서 잠만 자고 싶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바로 옆에서 얘기하듯 썼던 것이다.

조선시대 명문 양반가의 체면을 아는 사내라면 절대 쓰지 않았을 이야기들이 가득했던 그의 글은

그렇게 탈 권위적이기도 했다.


그런데, 탈권위적이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만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지금까지 움켜쥐고 있는 쓸데없는 것들을

그만 내려놓으라고 소리치는 것일 수도 있다.

그의 글에서 이런 위험요소를 감지한 친구 하나가 열하일기를 출간하지 말 것을

권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글이 얼마나 새로운 형식을 취했었는지를 짐작할 만하다.



열하일기의 가치


연암의 열하일기는 오래 전 그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인정하고

칭송하는 좋은 책이다.

누군가는 조선 5000년 최고의 문장이라고 일컬으며,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라는 하룻밤에 강 9개를 건너던 날의 기록과

야출고북국기(夜出古北國記)라는 중국의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옛 성벽을 넘는 밤의 기록을

언급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열하일기를 문학적인 측면에서 비교할 대상 없는

매우 훌륭한 글이라는 점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열하일기의 진정한 가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오류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열하일기에서 연암 박지원이 말하고 있는 무수한 새로운 것들에 대한 통찰은

그의 살아있는 문장력보다 몇 배 더 귀한 것들이다.


그는 가장 천한 것에 기본이 있다고 믿었고 학문에 한계를 두지 않았다.

사물에 두루 통달한 사람은 미혹되지 않는다고 하는 말은 평생에 걸친

연암의 인생철학까지도 엿볼 수 있다.


강연자는 열하일기의 저자인 박지원을 우리나라 최고의 문장가이며 만담가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열하일기를 세계 최고의 여행기라고 말한다.


연암은 여행을 하면서 그가 중요하게 여겼던 '사물에 두루 통달하여 미혹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본질을 꿰뚫는 혜안으로 사물을 대하며 그것에서 얻어지는 본질에 대한

깊이있는 탐구가 가능했을 것이다.

여행은 내 것을 내려놓고 새로움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걸 우리에게 그대로 보여주는

'열하일기'는 그래서 가히 세계 최고의 여행기일 수밖에 없다.

 

 

 

 

 

 

강연을 듣고


강연이 끝나자 당장이라도 열하일기를 꼭 사서 읽어보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해진다.

 그러나 역시 내가 읽어내기에 어렵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앞선다.


때마침 강연을 마친 길진숙 연구원이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낭송 열하일기'로 열하일기 읽기를 시작하라고 덧붙인다.

그 후에 좀 더 깊이 있게 열하일기를 읽고 싶다면 한글로 된 열하일기를 읽고,

그리고도 더 진짜 박지원의 문체를 접하고 싶어진다면 한자 원문으로 된 열하일기를

읽으라고 권하고 있다.


한자로 된 열하일기 원문까지 읽어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도전해 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강연자의 강의가 얼마나 쫄깃하고 알기 쉽고 재미가 있었는지

나는 그새 열하일기와 연암의 열렬한 팬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인문학 콘서트란, 자칫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인문학이라는 장르에

쉽고 재미있게 다가가도록 하는 일종의 공연이다.

광명시의 이 날의 공연은 성공적이다.

강당을 빠져 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껏 밝아져 있고, 무언가 뿌듯함까지 엿보이고 있었다.

모두가 연암 박지원과 열하일기에 한 뼘쯤 가까워진 듯한 마음을 안고 돌아갔을 것이다.

열하일기라는 고전에 한걸음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던 오늘은 열하일기를 귀로 들었으니

낭송 열하일기로는 입으로 말하고, 후에 그가 쓴 원문을 읽으며

눈과 가슴으로 새길 수 있을 것을 스스로에게 기대해 본다.


 

 

글·사진 | 광명시 온라인 시민필진 카라반(정연주)

http://zzugzzug2.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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