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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소통/광명여행

광명시 향토문화유산 1호, 철산동 지석묘(고인돌) 바로 보기 2 - 모진 세월을 이겨낸 우리 유산 1호

 

모진 세월을 이겨낸 우리 유산 1호 ②
광명시 향토문화유산 1호, 철산동 지석묘(고인돌) 바로 보기

제1기 광명시 온라인 시민필진

닭큐
Blog. http://doccu.tistory.com
닭큐데스크


 


<제일 처음 있었던 자리의 유적을 멀리서 바라본 사진>


철산동의 광명시민회관 전시실 입구와 광명시민운동장 사이 예사롭지 않은 모습의 이 바위는 ‘철산동 고인돌’로 알려진 청동기시대 유적입니다. 그리나 고인돌의 원래 위치는 이곳이 아니었습니다.




 

<개석이동>

그 곳은 광명고등학교 교문 옆 운동장 한구석이었고, 후속 조치로 광명시에서는 고인돌을 광명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하였습니다.




 

<개석을 트럭 위에 싣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터도 고인돌의 안식처는 되지 못했는지 1990년 8월 현재의 자리인 광명시민회관과 광명시민운동장 사이로 이전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광명고등학교의 학생 수 증가 및 관리상의 어려움 등으로 시정조정위원회를 거쳐 결국 지금의 장소로 이전됩니다.




 

<지석을 옮겨놓은 상태>

발굴 당시 기록을 통해 상황을 보면 고인돌은 동서 방향으로 길게 놓여 있었는데, 이 방향은 지금은 복개되어 보이지는 않지만 광명성애병원과 철산주공12단지 사이를 흐르던 안양천 지류가 흘러가는 방향과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지석묘의 지하구조>

또한 안양천 지류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가므로 고인돌에 묻힌 피장자의 머리도 서쪽 방향으로 놓여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며, 덮개돌과 받침돌에 사용된 암석은 석영이 많이 섞인 화강암이었는데, 비슷한 재질의 암석이 고인돌 북쪽 구릉인 현재의 광명시청 방면에 많이 흩어져 있어 아마도 이곳에서 돌을 채취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 디지털광명문화대전 - 학예사 양철원




 


 

개발과 문화보존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로 많은 수난을 겪었던 <철산동 지석묘>. 시내 한가운데지만 개발논리가 아닌, 향통문화유적 1호로서 시민회관 옆의 본자리에서 오래도록 남아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석묘 앞에서 장기 두시는 어르신들>

지난날 닭큐가 광명5동에 사는 동안 광명시청 옆에 위치한 매.우 위대한 <광명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3년 동안 이 <철산동 지석묘>를 수도 없이 지나쳤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때 그저 스쳤던 2000년 이상의 나이를 머금은 광명의 어르신 <고인돌>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어 글을 남겨 봅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자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양철원 학예사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