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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소통/광명여행

광명시 향토문화유산 1호, 철산동 지석묘(고인돌) 바로 보기 - 모진 세월을 이겨낸 우리 유산 1호

 

모진 세월을 이겨낸 우리 유산 1호
광명시 향토문화유산 1호, 철산동 지석묘(고인돌) 바로 보기

제1기 광명시 온라인 시민필진

닭큐
Blog. http://doccu.tistory.com
닭큐데스크


 


광명시 철산동 광명시민회관 옆에 위치한광명시의 오래된 유물 중 하나인  고인돌. 광명시의 각종 유적 및 유물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는 디지털광명문화대전에서는 이 고인돌에 대한 설명에 <북방식>이라는 표현을 병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북방식이라는 분류법이 맞는 걸까?


 

<철산동 고인돌>

[정의]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위치] 철산동 고인돌은 광명시 철산동 222-1번지에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철산동 고인돌은 본래 광명시 철산동 462-33번지에서 확인된 고인돌이나 현재는 광명시민회관 경내로 옮겨져 있다. 철산동 고인돌의 형태는 강화도 삼거리에 있는 3호 고인돌과 매우 유사한 모습이다. 두 개의 굄돌이 덮개돌을 받히고 있는 전형적인 탁자식[북방식] 고인돌로 무덤방에는 적석 시설이 확인되었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평면 모습이 긴 네모꼴이며 재질은 화강암으로 크기는 동서 길이가 292㎝, 남북 길이가 185㎝, 두께는 72~88㎝이다. 굄돌은 두 개이며 마구리 돌은 확인되지 않았다. 남쪽에 위치한 굄돌 크기는 길이 165㎝, 두께가 40~45㎝, 지표 높이는 약 50㎝이다. 북쪽의 굄돌은 길이 153㎝, 두께 약 40㎝, 지표 높이는 약 49㎝이다.
 
[의의와 평가] 철산동 고인돌은 광명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탁자식 고인돌이며 한강 이남 지역에서도 드물게 확인되는 고인돌로 주목된다.

[참고문헌]
• 『광명시의 역사와 문화유적』(세종대학교 박물관·광명시, 2003)
• 『광명시 문화유적분포지도』(광명시·수원대학교 박물관, 2007)

출처 : 디지털광명문화대전(Click)


 


흔히 고인돌은 남방식, 북방식으로 분류됩니다. 거대한 탁자 모양의 고인돌은 북방식, 바둑판 모양의 고인돌은 남방식, 한강을 중심으로 하여 북쪽에는 북방식, 남쪽에는 남방식이 분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인돌에 대한 연구가 진척됨에 따라 북방식이라 했던 탁자모양 고인돌은 한강 남쪽인 전라도에서, 남방식이라 했던 바둑판 모양의 고인돌은 한강 북쪽인 북한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또한 남방식과 북방식이 같은 지역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이와 함께 고인돌은 유럽, 인도, 중국, 일본 등 전 세계에서 발견되며, 세계의 고인돌 분포를 보면 남방식, 북방식의 분류가 보편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지역과 관계없이 고인돌의 모양에 따라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으로 분류합니다.

탁자식 : 탁자모양
바둑판식 : 탁자식에 비해 받침돌이 짧은 것
개석식 : 받침돌 없이 무덤방에 덮개돌을 올려놓은 것



 


이 분류법은 일제시대인 1926년, 일본인 학자 <도리이 류조>가 처음 정립한 이후로 정설화 된 것입니다. 그런데 <도리이 류조>가 나눈 이 남방식, 북방식에는 또 다른 논리를 바탕에 깔고 있었습니다.

즉, 한반도를 남부와 북부로 나누어 남부는 순수한 한민족의 영역이지만 북부는 대륙에서 들어온 다른 민족의 영역이며, 한민족은 예부터 스스로 발전하지 못하고 언제나 외부에서 들어온 세력에 의해 발전했다는 논리입니다.

이는 바로 식민사학이 주장하는 '타율성론', '만선사관'으로 한국사를 대륙, 특히 만주에 부속된 존재로 설정함으로써 한국사의 주체성을 부정하고 타율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같은 맥락에서 도리이는 고인돌을 남방식과 북방식으로 나누었고, 이 분류법은 식민사학의 논리를 입증해 주는 중요한 증거였던 셈입니다.

※ 만선사관(滿鮮史觀) : 20세기 초 일본 학자들에 의해 주장된 한국사에 대한 관점으로, 만주와 조선의 역사는 하나이며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는 만주에 종속적임을 그 내용.

※ 도리이 류조 : 시라토리 구차키치, 이나바 이와키치와 더불어 대표적인 식민사학자로 그의 자료는 일본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의 근거 자료가 됨.

위와 같은 분류에 대하여 역사민속학자 손진태가 해방직후 "남방의 돌멘(고인돌의 다른 이름)은 전부가 이러한 저형(低型)은 아니요 북방의 그것과 같이 궤탁(탁자)형의 것도 있다"고 문제제기 한 바 있으며, 학계에서도 북방식, 남방식의 분류는 거의 쓰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도 최근까지 남방식, 북방식으로 구분하다가 2006년판에서야 비로소 분류법을 탁자식, 바둑판식으로 고쳤습니다.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박은봉
출판 : 책과함께 2007.11.19
상세보기
자료출처 : 박은봉 교수의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2009.> 201p ~ 205p





 

<철산동 지석묘(고인돌) 주변에서 예쁜 아가 돌사진 촬영>




경기도 광명시청 문화체육과에는 양철원 학예사님이 계십니다. 아마 세계에서 광명의 역사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일거라 생각합니다. 이에 궁금한 것 못 참는 닭큐가 직접 양 학예사님과 통화했습니다.

학예사님 왜 이런 표현을 쓰셨나요?

일반인들은 위에서 지적했던 바와 같이 아직 남방식, 북방식이라는 이름이 익숙합니다. 이에 탁자식과 함께 일반인(닭큐 같은 ^^;)이 이해하기 쉬운 <북방식>이라는 용어를 병기하였습니다.

즉, 용어의 불합리한 부분은 알지만 문화유산에 대한 쉬운 전달과 이해도 중요함을 이야기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암튼 고려의 왕이 누구였고, 조선의 왕이 누구였는지 등 지배계층의 역사인 현재의 역사교과서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고장의 역사를 아는 이가 많지 않은 것은 당연합니다. 유물이나 유적이 부족하기도 하려니와 관련 기록의 부재도 한 몫 합니다.

하지만 최소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향토문화유산 1호>가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뭐. 다들 아시는 내용 닭큐가 괜히 말씀 드리는 것 같아 쑥쓰럽기는 하지만 광명시의 향토유적 1호는 <철산동 고인돌>이라는 사실.

시청 시민회관 옆에 위치한 그 고인돌이 그 고인돌입니다. ^^




 

그 고인돌 '철산동 지석묘'입니다.


 

 

고인돌의 아랫부분인 받침대를 중심으로 찍어 봤습니다. 대개의 자료가 덮개 위주로 찍혀 있어서 조금 다른 각도로 바라봤습니다. ^^;




 

새로운 느낌이죠? 평평하게 덮개를 받치고 있는 건 아닙니만 조화로운 균형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광명시에는 총 6개의 향토문화유산이 있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향토문화유산은 7호까지입니다만 유산 3호로 지정되었던 <관감당>은 경기도 지정으로 승격되어 예우로서 그 번호는 비어 있다고 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철산동 지석묘인 고인돌의 역사와 유래를 살펴봅니다. 다음 포스트로 > 클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