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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소통

시와 노래가 쏟아져 내리던 저녁 - 안도현, 이영주, 그리고 기형도. '기형도시인학교 시 콘서트 3人3色'

 

 

 

 

안도현, 이영주, 그리고... 기형도.

 

그들의 시와 함께 가을밤이 저물어 갑니다.

 

 

 

 

 

 

2012년 11월 2일. 기형도시인학교 시 콘서트가 있던 날 밤. 광명문화극장은 광명의 가을밤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곱게 물들였다. 오늘밤, 기형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노래하는, 가을과 시와 시인을 만나보자.

 

 

 

 

 

안도현, 이영주 그리고... 기형도가 있는, 3人3色 콘서트는 기형도 시인학교 회원들의 1년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문을 열었다. 기형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올라서니 시원하게 부는 바람과 마주하고 있는 듯 한 착각을 하게 된다. 시인을 꼭 닮은 사람들의 미소가 오늘밤 유난히 반짝인다.

 

 

 

 

 

 

하안 문화의집 신형철 관장님의 인사로 시 콘서트가 시작된다.

 

 

 

 

 

 

앙상블오딧세이의 연주가 객석으로 울려 퍼지고, 화면가득 펼쳐진 호수의 풍경은 은은한 감동을 몰고 온다. 해설과 함께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앙상블오딧세이는 클라리넷과 피아노 5중주(바이올린1, 바이올린2, 비올라, 첼로, 피아노)로 구성된 전문 공연팀이다. 문화예술회관과 학교 등 여러 곳에서 교과서 음악회, 렉처콘서트 등을 진행하고 있다.

 

 

 

 

 

 

내빈들의 축사(광명문화원장, 광명시장, 기향도(기형도시인의 누이))에 이어 오늘 콘서트의 사회를 맡은 이영주 시인과 안도현 시인이 등장해 기형도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주했다. 이영주 시인은 2000년 계간 문학동네로 등단했으며, [108번째 사내] [언니에게] 등의 시집이 있다.

 

 

 

 

 

 

기형도 시인과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선,후배사이였다는 안도현 시인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각종 학생 문학상을 휩쓸었다고 한다. 저서로는 [서울로 가는 전봉준],[모닥불],어른을 위한 동화[연어] 등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에 취하고, 시인들과의 만남에 도취하고 있을 때, 화면 가득 일렁이던 호수의 물결은 화면에서 흘러넘쳐 객석 바닥으로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안도현 시인의 '북항', '국화꽃 그늘과 쥐수염붓' 등이 기형도의 사람들을 통해 울려 퍼졌다. 조금 더 빈둥거리고 싶어 몇 년 동안 휴대폰도 가지지 않았다는 안도현 시인은 시낭송이 끝난 후, 재테크에 소질이 없어서 그저 열심히 시집을 내지만, 늘 적자라며 자신에 대해 솔직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안도현 시인의 시에 대해 궁금한 것을 질문하는 시간. 시인은 가장 애착이 가는 시집을 묻는 질문에 대해 "가장 애착이 가는 시는 앞으로 써야 합니다." 라며 재치 있게 답을 하기도 했다. 또, [북항]은 4~5년 동안의 시를 모아 만든 시집이라는 것과 시 '북항'은 '북'이라는 의미가 가진 복잡함을 짧은 시로 써 보고 싶어서 쓰게 되었다고도 했다.

 

 

 

 

 

 

우리 필진에게도 어느 정도 익숙한 '시락'은 안도현 시인의 '우리가 눈발이라면', 기형도 시인의 '엄마 걱정'을 노래로 불렀다. 기형도시인학교에서 창작시를 노래로 만드는 과정에서 생겨난 동아리인 '시락'은 시를 쓰는 즐거움과 시를 노래하는 즐거움에 푹 빠진 동아리로 우리의 필진, 제리님이 속해 있기도 한 팀이다.

 

 

 

 

 

 

'시락'팀의 공연이 끝나고, 화면가득 펼쳐진 파란하늘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싶어 애를 쓰고 있을 때, 기형도시인학교 회원들의 자작시 낭송이 시작되었다.

 

낭송된 시는 '시인을 오빠라 부르면 안 되나? - 김세경', '아버지 - 이해선', '흑백사진 - 이현희', '향유고래 - 송승경' 등이었다.


 

 

 

 

 

때론 가슴 찡해지기도 하고, 때론 추억에 젖기도 하며 사람들은 시 속으로 빠져 들었다. 낙엽이 지고, 쓸쓸한 바람이 부는 가을저녁인 탓인지 시인학교 회원들의 자작시 대부분은 슬픈 내용이어서 조금 아쉬움을 남겼다. 한 여름날에 크리스마스를 노래하듯, 가을밤에 따뜻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아쉬움.

 

 

 

 

 

 

노래가 된 회원들의 창작시를 노래하는 고미경님. 경희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소프라노 고미경은 뮤지컬 배우와 가수로 활동 중이며 현재 서울예술단 수석 배우로 50여 편의 뮤지컬에 출연했고, 2000년에는 제6회 한국뮤지컬 대상과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고미경님을 통해 울려 퍼진 '만추 - 이현희' '그대여 - 송승경'은 어느새 '시'가 아닌 '노래'가 되어있었다.


 

 

 

 

 

3人3色 시 콘서트의 3人 중 마지막 한사람. 기형도 시인의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기형도 시인은 유년기에 가족과 함께 광명으로 이사 온 후 청소년기부터 작품 활동을 했다.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안개)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공식 데뷔했다. 그리고 만 29일 생일을 엿새 앞둔 1989년 3월7일 새벽, 서울 종로의 한 심야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해 5월 유고시집(입속의 검은 잎)이 출간되었다. 살아있을 당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기형도 시인의 작품들은 이제 하나의 새로운 고전으로 우리 문단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의 시는 이미 불어로 번역되었고, 영어권에서도 번역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기형도'라는 그 이름은 이제,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적으로 그 위상이 우뚝 서게 될 것이란 걸 예감할 수 있다.

 

 

 

 

 

 

기형도 시인학교에서 만난 대부분의 시인들은 기형도와의 인연을 들려주곤 하였다. 안도현 시인 역시 그와의 인연의 한 자락을 들려주었다. 그와 동아일보 등단 선후배 사이라는 인연도 있지만 개인적인 이야기 하나를 슬며시 꺼내었다.

 

한 번은 기형도 시인이 익산에 내려오기로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상이 바빴던지 기형도 시인은 오지 않았으며 그 후로 영영 만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안도현 시인은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마음이 상했었는데 그가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면, 익산에서 술 한 잔 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으면 아마도 그렇게 떠나지는 않았을 거라고 오래전의 일이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하였다.


기형도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가을밤은 그 두께를 더해가고 시 콘서트는 막바지를 향해 갔다. 시인학교 사람들의 창작시 낭독이 이어지고, 안도현 시인의 짧은 코멘트도 들을 수 있어서 시인의 연륜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시간이었다.

 

끝으로 광명시립합창단(남성 복4중창)의 힘찬 목소리로 기형도의 '어느 푸른 저녁'과  정지용의 '향수'가 광명문화극장에 울려 퍼지3人3色 시 콘서트는 막을 내렸다. 기형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 작은 콘서트가 오래전 떠나간 그를 기억하고 노래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를 만나려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문학관을 세우는 씨앗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가을밤은 기형도의 시처럼 깊어가고 있었다.

 

 

 

 

 

                                                       기형도

 

 

영혼이 타오르는 날이면

가슴 앓는 그대 정원에서

온 밤내 뜨겁게 토해내는 피가 되어

꽃으로 설 것이다

 

  

그대라면

내 허리를 잘리어도 좋으리

 

 

짙은 입김으로

그대 가슴을 깁고

 

 

바람부는 곳으로 머리를 두면

선채로 잠이 들어도 좋을 것이다

 

 

 

 

 

글·사진 | 곧미녀(김경애) & 제리(이현희)

 


광명시 온라인 시민필진 1기 & 2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