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마을. 나는 오늘도 변함없이 그대로인 길, 나무, 아파트, 상가 사이를 지나다니며 살고 있습니다.
이 안을 오가며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지나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가 누구인지, 어디에 사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해요. 두 아이의 엄마, 동네 유치원생, 직장인, 세탁소 아줌마, 경비 아저씨. 이 정도로만 옷차림, 키, 나이를 가늠해서 추측할 수 있을 뿐이죠.
어디에 산다는 말은 단순히 먹고 자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생활하며,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지낸다는 뜻도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는 한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고, 배우자를 만나고, 아이를 키우며
일생을 보내는 게 지극히 평범한 삶이었을 거예요.
이웃사촌이란 말처럼 모두가 서로 알고 지내는 게 당연한 시대였죠.
마을 사람 모두가 옆집 숟가락 개수 정도는 알고 있다는 말처럼요.
마을 안에서 같이 자라고, 일하며, 알고 살던 때.
아이들은 냇가, 골목길, 집안에 모여 시끌벅적하게 놀았고,
어른들은 일하는 도중 목이 마르면 동네 어느 집 마당에 서슴없이 들어가 물을 마시고
손발을 씻었습니다.
모두가 이웃이니 이런 모습들이 아주 당연했을 거예요.
하지만 이제 아파트 왕국이 된 도심에선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일터와 집이 따로 떨어진 도심에서 사람들은 잠을 자고, 쉬고, 일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때문에 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이곳저곳 도시들을 전전할 수밖에요.
그러다 보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주변에 누가 있는지에 대해 점점 무관심하게 되었어요.
우리 사회는 그동안 빠른 성장으로 먹고사는 형편은 나아졌지만
양극화, 사교육비, 부동산 불안 같은 부작용이 많아졌어요.
최근의 아파트 경비원 자살, 부녀회 난방비 사건, 입주자 대표회에 대한 불신,
층간 소음으로 생기는 갈등, 이런 모든 사건들이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을이란 공동체가 해체됨에 따른 병리 현상이라 말할 수 있을 거예요.
바로 옆집에 살면서도 서로 얼굴을 모르고 살다 보니 이런 문제들이 생긴 게 아닐까요?
최근 이런 도심 생활의 부작용들이 심각해지면서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바로 중앙부처에서부터 대도시, 그 안의 작은 지자체에서까지 지역공동체, 마을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마을 만들기가 한창이에요.
마을공동체가 팍팍한 도시 생활의 물리적 개선과 공동체 회복의 대안으로 인식되기 시작된 거예요.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훤히 아는 불편함이 아니라 사생활은 존중하되
서로의 필요한 것을 나누는 공간으로서의 마을 말이죠.
‘마을 공동체 만들기’란 한마디로 도심에 사람의 숨결을 불어넣으려는 일입니다.
마을 공동체의 한 예로 공동육아를 들 수 있어요.
마을이 사라진 도시 생활에서 육아는 엄마들에게 매우 힘든 일이 돼버렸어요.
이렇게 힘든 육아로 고통을 분담하고자 모인 엄마들이 공동육아를 준비하게 됐죠.
공동육아 모임이 생기고, 이것이 발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협동조합 형태로
공동 어린이집을 만들기도 했어요.
공동 어린이집을 나온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레 공동 방과 후 교실로 이어지고,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부모가 직접 만든 대안 학교로 진학하기도 하죠.
이렇게 아이들은 20년이라는 미성년 시기를 함께 책임지고 돌봐줄 수 있는
마을이라는 중요한 인프라 안에서 자라는 셈입니다.
또 그동안 육아에서 소외된 아빠들이 공동육아를 중심으로 모이니,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아이들, 그리고 마을 일에 관심을 갖고 또 하나의 공동체가 형성되기도 해요.
아빠들이 모여 마을 목수가 되고, 골목길을 청소하고, 이웃의 집을 고쳐주기도 하고,
벽화를 그리기도 합니다.
여기에 마을텃밭, 마을 도서관, 마을축제, 마을장터나 생협과 같은 것들이
풀뿌리처럼 생겨나기도 해요.
이처럼 마을공동체 안에서는 태어나고, 배우고, 성장해서 아이를 키우고, 일하고,
늙어갈 때까지의 삶에 맞닿은 모든 활동이 그 안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사람들은 몇 년을 한 곳에 살아도 앞, 뒷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도시에서
마을공동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됐어요.
비로소 생활의 필요를 공감하고 그 해결을 궁리하며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이 두텁게 연결되죠.
이게 바로 호혜적인 생활관계망이고 바로 ‘마을’입니다.
얼마 전 광명시에서도 마을 만들기 사업에 대한 대화의 장이 있었습니다.
경기도 따복공동체 지원단에서 준비한 시군 순회 대화마당, 그리고 광명시에서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마을공동체 만들기 공모사업 설명회가 동시에 열렸어요.
이날 광명시청 대회의실에는 꽤나 많은 분들이 모여 요즘 마을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선 먼저 경기도 따복공동체지원단장님이 따복공동체에 대해 설명했어요.
따복공동체란 "따뜻하고 복된 마을 공동체, 주민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만남과 소통의 공간.
즉, 우리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터, 사람 공동체"라고 해요.
쉽게 말해, 마을을 이루는 이웃이 만나서 소통하고, 이해하고 신뢰를 쌓아가며 서로 협력할 때 마을이 행복해진다는 거죠. 이런 마을이 서로 협력하고 연대하면 도시가 행복해지고 궁극적으로
국가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거예요.
즉, 예전의 시골마을 이웃 관계처럼, 도시에서도 자발적으로 소통과 나눔이 일어나는
만남과 공유의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이야기입니다.
경기도에선 마을 만들기에 필요한 예산과 지원센터, 조례를 만들고 따복공동체란 이름으로
사업을 준비했다고 해요.
이 준비과정에서 현장을 발로 뛰어가며 지역에 맞는 마을공동체 교육, 컨설팅,
성공사례 발굴․확산 같은 지원 계획을 세워놓고 주민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따복공동체 사업 설명과 질문 답변 시간이 끝나고, 광명시 미래전략실 정책비전팀장님이
마을공동체 만들기 공모사업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어요.
역시 따복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주민 스스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마을을
회복하자는 것이 핵심이었죠.
마을공동체가 회복되면 지역의 문제를 마을 주민이 스스로 해결해가면서
결국 삶의 질이 향상될 거라는 설명과 함께요.
광명시에서는 예전부터 이런 활동을 하고 있거나 앞으로 활동할 공동체를 공모했어요.
공모 대상으로는 주로 집, 담장, 거리, 숲, 하천 등의 주거환경개선 활동, 그
리고 공동육아나 어린이, 청소년 보호, 어르신 돌봄 같은 복지와 관련된 활동, 그리고 마을 전통,
축제, 예술을 지키는 활동을 예시로 제시했어요.
공동체 활동의 성격에 딱히 제한이 있는 건 아니지만, 광명시 특성에 맞는 마을공동체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하면서요.
마을, 그리고 공동체는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을을 행정기관에서 사업을 계획해서 만들겠다니, 게다가 이런 도심지에서
마을공동체가 회복될 거라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라고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번 사업을 내놓은 경기도나 광명시에서는 이런 시각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마을공동체의 주체가 주민이 되어, 주민 스스로 관계를 맺고, 결정하고, 문제나 갈등을 해결하고,
일을 추진하기를 바라는 거예요.
관에서는 주민이 스스로 만든 공동체가 꾸준히 커갈 수 있도록 도움만을 주겠다는 것이죠.
이건 정책을 내놓고 주민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주민이 중심이 되어 스스로 공동체를 주도하는 것을 기다리며 재정적·행정적인
지원을 해준다는 의미예요.
마을공동체 사업을 주민에게 공모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예요.
광명시에서는 이제야 처음으로 시작되는 사업인 만큼 앞으로 한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거예요. 그래서 이번 공모에 선정된 공동체를 대상으로 올해 말까지 마을 학교, 사업 컨설팅, 워크숍 등을
열어서 마을공동체에 대해 더 배우고, 키울 수 있게 지원할 계획도 있다고 해요.
광명시에도 찾아보면 자발적으로 생긴 마을공동체 형태의 주민 모임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이처럼 마을을 회복하고 이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고 볼 수 있을 거예요.
이런 주민들의 기대에 맞게 앞으로 경기도나 광명시가 예산이나 행정적인 지원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마을공동체를 발굴하고 더 키워나가기를 바라봅니다.
마을에서 함께 산다는 것은 나와 이웃, 지역 사회와 국가가 어울려 편안하게 살고,
우리 모두의 아이들을 소중하게 키우는 일이에요.
그리고 마을을 만든다는 것은 내가 사는 곳에 대한 마음가짐의 변화,
그리고 이웃과 관계를 맺으면서 생기는 생활 변화를 요구하는 일이에요.
특히 이웃 간의 교류가 적은 요즈음 아이들이 더불어 사는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부모들도 스스로 가꾸어가는 삶의 소중함을 더 넓은 공동체 차원에서 실현해 가는 태도가
필요할 거예요.
마을이란 '나의 가족과 내 아이만 키우기' 가 아니라
'너와 내가 어울려 함께 세상을 살아가기'일 테니까요.
끝으로 마을 만들기, 마을공동체에 대해 관심 있으신 분들을 위해 문의할 곳을 남겨놓을게요.
경기도 따복공동체지원단 대표전화 031) 8008-3580
따복공동체 자료 공유 http://cafe.daum.net/ddabok
광명시 미래전략실 정책비전팀 02-2680-2058
글·사진 | 광명시 온라인 시민필진 세린(이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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