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어느 날. 하얀 쌀을 물에 불려놓고.....
추억에 젖는다.
나고 자란 곳은 다를지라도 사람은 누구나 옛 추억 하나쯤은 가슴에 품고 산다.
내 추억 속엔, 명절이나 되어야 한 번씩 맛보았던
봄 햇살에 하얀 눈 녹듯
김 모락모락 피어나는 가래떡이 있다.
재래시장이 지척인지라 지금 당장이라도 시장에 달려가면 살 수 있겠지만,
뉴스마다 하얀 벚꽃 흐드러지게 핀
오늘은 왠지...... 조금 천천히 내게로 오는 가래떡이 먹고 싶다.
간만에 사서 고생을 하기로 마음먹으니, 가슴 참 설렌다.
나도 '봄' 타나보다.
나는 오늘 가래떡을 뽑기로 한다.
수많은 가래떡 중에
우리네 어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긴 시간과 수고스러움이 더해진
향수에 젖은 하얀 가래떡을 뽑기로 한다.
서너 시간쯤
쌀을 물에 담가 두었다 꺼냈더니 마치,
물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모르던 개구쟁이 손바닥 불어나듯 하얀 쌀이 퉁퉁 불었다.
설레는 맘으로 도착한 방앗간은 마음 좋은 주인장만큼이나 광명의 옛 추억을 한껏 품고 있다.
물놀이에 퉁퉁 불어난 쌀들을 기계에 넣고
두 번의 덜덜거리는 굉음이 지나간 후 쏟아져 내린 하얗고 고운 쌀가루
(어릴 적 나는 빨간 고무대야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젊은 날의 내 어머니가 저 하얗고 고운 가루 한 줌 먹여줄까 고대하며...
은색의 커다란 양은 냄비를 닮았지만, 요 녀석은 정말 생소하다.
"옛날엔 네모난 찜 솥에 쌀가루를 쪄 냈는데, 요즘은 이걸로 해야 잘 쪄지고 시간도 절약돼서
많이 이용한다." 방앗간 주인장의 설명이 지나간 자리,
요 녀석 기특하고 정겹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조용하던 찜기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하얀 뭉게구름
봄날 꽃바람을 타고 피어나던 고향마을 아지랑이를 닮아 있다.
젊은 날 내 어머니의 미소처럼 자꾸만 떠오른다. 자꾸만 사라진다. 자꾸만......
넉살 좋고 말솜씨 좋은 주인장은
삼십 년 전엔 명절 일주일 전부터 방앗간 앞에 쌀을 담은 대야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그 많던 대야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 줄을 따라 정이 흐르고,
추억이 흐르고, 시간이 흘렀을 테지. 그 시간을 따라
그렇게 사라졌을 테지(사진-전북 고창)
추억 속 방앗간은 어느 곳 하나 냄새를 품지 않은 곳이 없다.
팥 솔솔 뿌려진 시루떡 붉은 냄새, 하얀 눈 솔솔 내려앉은 뭉근한 백설기 냄새, 우리 엄마 좋아하던
노란 호박 송송 박혀있는 호박떡 단내까지......
그리고 그 냄새들 위에 살포시 떠다니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랑 들기름 냄새.
하얀 가래떡이 오고 있다.
찜 솥 위 모락모락 피어나는 추억을 타고 천천히 내게로 오고 있다.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우리네 어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긴 시간과 수고로움이 하얗게 묻어있는 가래떡을 먹을 수 있다. 시간 참 더디게 흐른다.
쌀가루 찜? 떡고물 찜? 아무리 추억을 더듬어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찜 솥에서 막 나온 하얀 덩어리라고 부르기로 한다.
뜨겁고 하얀 덩어리는 쌀밥 수십 공기를 쌓아놓은 듯,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는 것 같다.
사서 고생은 이런 맛에 하는 거라 생각하니 또다시 설렌다. 아마도 봄 타나보다.
마음 좋고 솜씨 좋은 방앗간 주인장 부부의 손끝에서 하얗고 굵은 실이 뽑아진다.
퉁퉁 불었던 쌀은 간데없고 매끈한 길쭉한 몸매 뽐내며
가래떡이 뽑아진다.
(젊은 날의 내 어머니 주름 깊은 손으로 가래떡 한 줄 집에 내게 건네준다.)
"기다리느라 욕봤다." 나는 그 가래떡을 한 입 베어 문다.
오늘은, 고향 내음 묻어나는 바람이라도 살짝 불라치면
하얀 벚꽃 잎 비가 되어 쏟아지는 봄이다. 가래떡에 벚꽃 내음이 묻어 있다.
나고 자란 곳은 다를지라도 사람은 누구나 옛 추억 하나쯤은 가슴에 품고 산다.
내 추억 속엔, 명절이나 되어야 한 번씩 맛보았던
김 모락모락 피어나는 가래떡이 있다.
나는 오늘
하얀 가래떡 뽑아놓고...... 추억을 이야기한다.
글·사진 | 광명시 온라인 시민필진 곧미녀(김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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