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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소통/소소한 일상

광명역 통일 전국마라톤대회

 

 

 

 

 

어느 날, 곧미녀님이 가까운 필진들에게 단체*톡으로 마라톤대회 이야기를 꺼냈다.

함께 뛸 사람을 찾는 것이었다.

나는 평소 한 번 해보고 싶었던 터라 바로 손을 들었다

 

 

 

 

 

 

 

 

 

"저요!"

오랜만에 달리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남편에게 4월 5일 마라톤에 참여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아이 둘을 봐줘야 하기에 남편의 허락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애들 보기 힘들다며 투덜댈 줄 알았던 남편의 대답은 의외였다.

 

 

 

 

 

 

글쎄, 잘 뛸 수 있을까?”

에이, 5킬로 밖에 안 되는데요.”

그래도 힘들 텐데.”

나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 픽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 내 체력에 놀랐던 거 기억 안 나요?”

 

 

 

 

 

 

 

귀차니즘에 시간을 질질 끌다가 뒤늦게 접수를 하게되었다.

그리고 대회 4일 전, 정체 모를 택배 물건 하나가 경비실에 도착해있었다.

납작한 우편물을 뜯어보았다. 

대회 안내 책자와 등번호였다.

책자를 살펴보다 시상내역에 눈이 갔다.

 

 

 

 

 

 

20등 안에 들면 상품을 준단다.

생각보다 상품이 많네?’

20등만 하면 쌀 10kg을 받을 수 있다고 남편에게 알려줬다.

접수비가 1만 원이니 쌀만 받아도 돈을 버는 셈 아니냐며 벌써 쌀을 얻은 듯 의기양양해졌다.

남편은 과연?’이라는 반응이다.

 

 

 

 

 

 

대회 전날, 미리 사서 모셔놓은 트레이닝복을 꺼내 입어봤다.

아름다운 가게에서 7500원에 득템한 캔버스화도 점검했다.

그러다 문득 네이*마라톤 캔버스화를 검색해보았다.

 

그리곤 형편없는 목수는 남편 앞에서 연장 탓을 하기 시작했다.

 

이거 신고 뛰면 발 아프다네요? 20등 안에 들려면 더 좋은 운동화가 필요한데......”

 

남편의 반응은 여전히 건조&단호했다.

 

상 받는다는 보장만 있으면 사주겠지만, ....”

못 받을 거라 너무 확신하는 거 아니에요? 만약 받으면?”

그럼 운동화 사줄게.”

“......”

 

 

 

 

 

 

식목일 아침이 밝았다. 컨디션이 좋았다.

조금 늦게 나오긴 했지만, 택시를 타니 금방 도착했다.

일요일 아침의 꿀 같은 늦잠을 포기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마라톤용 몸매로 쫙 빠진 사람들 사이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나도 어엿한 ‘2015 광명역 통일 전국마라톤대회의 참가자라는 생각으로 어깨를 쭉 폈다.

 

 

 

 

 

 

곧미녀님 얼굴을 보니 동지를 만난 듯 마음이 놓였다. 곧 행운권 추첨을 했다.

예상대로 행운은 우리를 비켜갔다.

왠지 자주 만난 듯 반가운 이봉주 선수가 등장하고 다 같이 준비운동을 시작했다.

 

 

 

 

 

 

다리를 풀고, 허리를 돌리고, 팔 벌려 뛰기를 했다. 나이 탓인가 몸이 뻑뻑했다.

아침을 안 먹어서 배가 고파왔다. 카메라 셔터가 터지는 게 신경 쓰였다.

평소 운동 좀 할걸. 밥 한 숟갈이라도 뜨고 올걸. 예쁘게 좀 하고 올걸. 살 좀 뺄걸.

뛰면 더울 텐데 반팔 입을걸....

 내가 대회에서 20등 안에 들지 못할 것 같은 이유들이 순식간에 줄을 섰다.

 

 

 

 

 

 

 

방송에서 참가자들을 출발선으로 불렀다. 대회 시작을 알리는 폭죽이 용솟음하며 터졌다.

 제일 먼저 하프코스부터 출발, 그다음 10km 코스가 출발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참가하는 5km 코스가 출발선에 섰다.

 

 

 

 

 

 

5km는 여성과 아이들이 대부분일 줄 알았건만, 이럴 수가...

 젊고 건장한 남성들로 빽빽했다.

20등 안에 못 들 것 같은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될 수밖에 없었다.

운동화끈을 괜히 다시 꽉 묶었다. 출발이다.

 

 

 

 

 

 

출발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선두그룹을 제외한 나머지는 천천히 달렸다. 아니 사실 빨리 걷고 있는 것 같았다.

몇분 지나니 앞사람들과 거리가 점점 벌어졌다.

3분이나 지났을까? 같이 달리던 곧미녀님이 한마디 하셨다.

 

아효, 힘들다.”

 

 

 

 

 

 

 

웃고, 수다 떨고, 사진도 찍으며 여유 있게 달렸지만, 어느 순간 숨은 점점 차올랐다.

1km 지점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오고, 서독터널도 나왔다.

 

 

 

 

 

 

 

벌써 반환점을 지나 돌아오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빨리 뛰어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동안 이미 수십 명이 내 뒤 쪽으로 사라졌다.

쌀이 물 건너갔다는 걸 깨닫고 깔깔깔 웃었다.

이제 목표는 완주로 하향 조정되었다.

 

 

 

 

 

 

 

인생은 종종 마라톤에 비유되곤 한다. 어차피 종착지는 다 똑같다.

가는 방법은 각자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서둘러 가든, 한 눈 팔며 가든, 찡그리며 가든,

웃고 떠들고 가든, 그에 따른 결과는 내 몫이다.

쌀을 잃고 나니, 인생에 대해 논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드디어 반환점. 이제 절반일 뿐인데, 그저 뿌듯하다.

하루의 반짝 체험이 될지라도 명색이 마라토너인데, 그에 걸맞은 배경음을 깔아주고 싶다.

 

 

 

 

 

 

 

♬추천 BGM - S.E.S.의 ‘달리기’

 

 

 

 

 

 

 

1km가 남은 지점에 다다랐다. 숨이 턱까지는 차지 않은 것 같아 더 박차를 가했다. 곧미녀님이 뒤쫓아 오지 않았다. 골인 지점까지 남은 힘을 다해 달렸다. 다리와 발바닥이 아파왔다.

 

드디어 골인!

 

헥헥. 뛸 때는 몰랐는데, 멈추니까 체력이 확 떨어진 게 느껴졌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어지럽기까지 했다. 기록은 공개하지 않는 게 좋겠다.

 

 

 

 

 

 

완주한 사람들은 줄을 서서 기록증(5km 제외)과 물과 간식, 메달을 받았다. 먹거리를 배부하는 곳에서는 고기와 김치, 두부, 막걸리를 나눠주었다. 맘껏 먹으라는 방송도 나왔다. 내년에도 참가하고 싶어졌다. 급피곤하고 빗방울도 조금씩 떨어지고 있어서 일찍 자리를 떴다. 상을 받을 영광의 얼굴들은 시청홈페이지에서 보기로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이 대뜸 물었다.

 

 

 

 

쌀은?”

나는 엄살을 부리며 대답했다.

신발 때문에 발이 아파서 빨리 뛸 수 없었어요.”

남편은 믿어주는 척했다.

 

 

 

 

 

 

 

나의 첫 마라톤 체험기는 여기서 끝이다. 그리고 못 이룬 목표 덕에 나에게는 다시 도전할 기회가 주어졌다.

 

쌀아, 내년에 만나자. 내년에 못 만나면 그다음 해에 만나자. 또 못 만나면 그 다음 다음 해에. 그래도 못 만나면 그 다음 다음 다음 해에......

 

 

 

글·사진 | 광명시 온라인 시민필진 세린(이문희), 곧미녀(김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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