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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소통/소소한 일상

그리움... 그리고 재회, 다시 이별

 

 

꽃샘추위라는 말을 합니다.

꾳샘추위의 사전적인 정의는 '이른 봄 꽃이 필 무렵의 추위'를 말합니다.

 

한 겨울 추위를 지칭할 때는 '한파', '맹추위' 등 추위 그 자체만을 언급하지만,

 꽃이 피고 새싹이 날 때쯤에는 꽃샘추위라 합니다.

봄이 피어나는 것을 시샘하는 추위라고 할 수 있겠죠?

 

이처럼 꽃샘추위는 현재를 지칭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나간 시간은 그리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면 지나간 시간을 잊어버린 의미는 아닐 것 같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말처럼 어둠이 있어야 빛을 볼 수 있듯이​

꽃샘추위라는 말은 겨울과 봄을 함께 지칭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는 시간이 아쉽지만 오는 이를 받아들이는 모습이라고 할까요?

 

 

 

 

 

 

한 겨울 나뭇잎이 다 떨어진 나무를 보면, 나무 그 자체를 볼 수 있습니다.

한 여름 무성한 나뭇잎이 있을 땐 우린 나무의 본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의 모습과도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의 말처럼 우리는 페르소나(persona - 사회적 가면)​로

자신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게 내 모습이라고 합니다.

나를 가리면서 나라고 하죠.

이제 그 나무에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나고 있었습니다.

 

 

 

 


 

 

이 고목도 예전엔 무성한 나무였을 것입니다.

생명을 다한 나무는 자신의 밑동을 빌려 이끼가 살도록 공간을 빌려주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인가를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요?

어렸을 적 우리는 그랬습니다.

나는 무엇이든 잘 할 수 있고, 또 그런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철이 들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철들었다는 표현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 맞는다면, 위 고목은 철든 나무겠죠.

우리는 철이 들었을까요?

 

 

 


 

 

 

노란 산수유가 피었습니다.

 

 

 

 

 

 

이제 새싹을 내려는 아이들도 보이고요.

 

 

 

 

 

 

개나리는 이미 만개했네요.

봄꽃은 유채색이 무엇인지를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사진처럼 무채색에서...

 

 

이렇게 유채색으로 변했습니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은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나비 같은 진달래입니다.

봄이 왔다고 어디론가 훌~ 훌~ 날아갈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구름처럼 목련이 피었습니다.

목련은 그런 것 같아요.

 

목련은 항상 바람처럼 오고, 구름처럼 머물다가,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 같아요.

그래도 목련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괜찮다고. 넌 충분히 아름다웠다고​

 

 

 

 


 

 

봄꽃 중 가장 흐드러지게 피는 꽃이 벚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꽃을 좀 다르게 부르고 싶습니다.

 

but 꽃...

 

해석은 여러분께 ^^


 

 

겨울...

우리는 자연의 민낯을 봤습니다.

푸르름도 없고, 유채색의 꽃도 없는 황량한 자연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그 자연을 그냥 지나쳤습니다.

볼 품 없다고, 볼 것이 없다고, 그리고 춥다고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연은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말하죠.

 

'나 다시 왔다.'

 

그런데... 다시 갈려고 하네요.

 

 

 

 


 

 

이 아이에게 물어보고 싶네요.

 

봄이 왔다고 했는데, 넌 벌써 어디로 가려고 하니?

 

 

 

글·사진 | 광명시 온라인 시민필진 슈퍼맨(김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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