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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소통/광명여행

이순신 장군이 광명사람이었다? - 광명시를 한 눈에 볼수 있는 향토사료관

 

"내가 사는 동네가 어떤 곳일까?"
"광명에서 유명한 사람은?"
"광명에서 000최초는?"

이런 의문 가끔 생각나지 않았습니까?
굳이 광명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이곳이 어떤 곳인가라고 의문을 가졌을 겁니다. 다만 스쳐 지나갔을 뿐!


 


광명시에서 학교다니는 학생이라면, 특히 초등학생이라면~
고장에 대한 의미를 고취시키기 위해 시내 관련 박물관들을 견학하라는 숙제가 많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 : "어디어디를 갔다오세요"
학   생 : "그게 어딘데요?", "광명시엔 무엇이 있죠?"


우리가 살고 있는 광명시에도 알고보면 많은 유적지가 있습니다.

충현박물관, 철산동 지석묘, 이순신 장군묘 등등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겠죠.
각종 유물과 서적, 인물의 초상 및 당시의 사진. 그리고 소. 개. 글.

물론 성인들에게도 유익하고, 한 번씩은 들려도 좋을 유익한 곳이라 생각합니다.
위치도 광명중앙도서관 2층이잖아요. 또 1시간이면 뚝딱! 볼 수 있죠.
광명의 상징이 뭔지. 꽃은? 새는?

사료관은 자신이 살고 있는 이곳에 대하여 전반을 이야기 해 줍니다.
또 타지 분들의 "광명이 무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합니다.

일단 사이버 향토사료관이라는 홈페이지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gmhistory.or.kr/


주소 : 경기도 광명시 광명7동 495-1(네비게이션을 쓰는 분들을 위해서~~)


 



광명사거리역에서 시흥방면으로 쭈욱 가다보면 광명스피돔(경륜장)이 나옵니다. 거기서 좌향좌해주시면 됩니다. 자세한 지리는 위 지도를 참조해 주시구요.


 

광명시의 꽃이 "장미"랍니다. 마침 장미의 계절인 6월이네요.
쪼~~오기 뒤에 광명중앙도서관 보이시죠? 장미꽃이 만개한 뒤로 사료관이 자리한 광명중앙도서관을 찍어봤습니다. 둥그런 건물 사이로 사료관이 보이는 것 같기두 하구. 히힛~



 

도서관 2층입니다. 왤케 어둡지? 왼쪽 유리벽의 채광이 빛과 따뜻함을 주고 있습니다.

천장에 "조용히"가 여기는 도서관임을 말해주네요.

암튼 가 봅시다.



 


입구부터 천천히 지나가봅시다.



 

가까이서 한 컷!! 요깁니다. 요런 간판이 보이죠.

뮤지엄 오브 히스토리 앤드... 앤드... ^^;



 

입구 옆에 비치된 사료관의 구조입니다. 시계방향으로 뱅글뱅글 돌며 전시물을 구경할 수 있도록 배치했습니다.


반대편으로 거꾸로 들어가서 구경하려다 행정보시는 분께

"이 쪽이 입구입니다.~~"라는 친절한 멘트를 들어야만 했죠.^^;


 

이 분입니다. 한 말씀 하신 분!! ㅋㅋ

물론 광명시에 대해 친절하게 안내해주신 분이기도 합니다.
역시 초상권 문제로 고개를 숙이시고 계십니다. 절대 부끄러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제가 "시인 기형도"를 앞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 기형도"에 관한 자료를 찾고 있다고 하니까 철산동에 위치한 평생학습관의 동아리 등을 활용해 볼 것을 권하시더라구요.
"시인 기형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시는 분들이 따로 계시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반갑던지.
무지 막막했거든요.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포스팅에서 쓰기로 하죠.

아~~ 참고로 이 날 총 3번 방문했습니다. 봤던 것 또 보고, 안 찍은 사진 또 찍고!!
마지막엔 물으시더군요.

'누구냐 너!!" ㅋㅋ



 


 

제일 먼저 눈에 띄는(가운데 있음;) 광명시 로고 조형물입니다.
그림으로만 봤지 요런 조형물은 처음이라능.

조형물에 색깔이 있습니다. 둥근 테모양도 있구요. 그런데 우리 사실 잘 몰랐잖아요.
빨간색이 뭔지, 파란색이 뭔지.
빨간색은 북쪽이니까 "빨갱*", 파란색은 남쪽이니까 "스머* "
이럴수는 없잖나요. ㅋㅋ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전체모양
- 첨단미래를 향해 힘차게 도약하는 이미지를 율동적인 원과 원이 교차하는 형태로표현함
- 상단부는 광명의 태양, 미래, 희망을 상징하는 3개의 원을 표현한 것임
- 하단부의 원은 도약하는 광명시의 든든한 기초와 미래지향성을 상징

색 채
- 적색은 태양빛과 열정을 상징하고 청색은 광명시민의 푸른 마음과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정신을
  상징하면서 젊고 싱싱한 광명시의 현재와 밝은 미래를 암시한다
- 본 마크에서 사용되는 색채는 광명적색, 광명청색으로 명명하고 광명 고유의 색으로 지정한다.

출 처 : 광명시청 홈페이지

요런 의미라네요. 대단히 진취적인 의미가 담겨있죠?


 

광명의 상징입니다. 여기서 알았답니다. 뭘요? 시의 꽃이 "장미"라는 사실!

그래서 맨 위의 도서관 사진은 마지막에 집으로 가기 전 장미를 중심으로 찍은 거랍니다. ㅋ
옆에 은행나무가 서 있고, 까치가 날아갔으면 더 좋았을텐데... ^^



 

(모두 소개하고 싶지만 여기선 두 분만 소개합니다. ^^;)


 

광명에도 많은 훌륭한 분들이 계십니다.

흠... 훌륭한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생각해 볼 문제이지만
지난 역사를 기준으로 관직에서 훌륭한 업적을 쌓으신 분들이라는 게 제 친구들의 통설입니다.

물론 우리집은 우리집 통설에 따라 개인 하나하나가 모두 훌룡한 분이고, 훌륭한 역사가 됩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물론 대단히~ 훌륭한 분들이십니다.

역시 우리집 통설에 따르면. ^^

위 사진은 '광명의 인물'을 모아놓은 자료실입니다.
읽을거리가 제일 많은 곳입니다. 꼼꼼히 읽어보시길 권유하는 바입니다.


 

대표적인 분으로 오리 이원익 선생 계시구요

(이 분이 사시던 곳 포스팅 한 바 있습니다. 충현 박물관 포스팅 바로가기)



 

이순신 장군님 계십니다.

여러분 이순신 장군 다 아시죠?
임진왜란 당시 왜적의 침입을 막기위해 혼신을 불태우시던! 역사에 만약(IF)이 있었다면 다시 되돌리고 싶던 그 때에 활약한 분입니다.

광명분이시더군요. 모르셨죠? 위인전에 보면 다 나오는 데...
허~~ 참!!

저도 물론 이 분께서 광명 태생인 것은 여기서 알았답니다. ^^;

간략히 소개하자면 조선시대 무신이구요. 충무공 이순신이 아닌 무의공 이순신입니다.

이순신(李純信, 1553년[1] 12월 27일 ~ 1611년 9월 2일)은 조선 중기의 왕족, 무장, 유학자이다. 임진왜란 때에 활동하던 장수로 그의 상관이기도 했던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등림수 이순신(李舜臣) 등과의 구별을 위해 무의공 이순신, 입부 이순신으로 불린다. 양녕대군의 다섯째 서자 장평도정(長平都正)의 6대손이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9대 방조가 된다. 본관은 전주, 시호는 무의(武毅), 자는 입부(立夫)이다.

양녕대군의 후손으로 1578년(선조 11년)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의주의 판관, 혜산진 첨절제사로 근무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李舜臣)의 휘하에서 중위장·전부장으로 옥포·합포·적진포·당포·한산도·부산포 해전 등에서 활약하였고, 정유재란 후반에 충무공 이순신이 전사하면서 일시적으로 그의 역할을 대행(代行)하기도 했다. 또한 임진왜란 때 전사한 이억기의 친척이기도 하다.[2] 학봉 김성일(金誠一)의 문하생이기도 하다. 경기도 시흥 출신.

출 처 : 위키백과
※ 이순신 지묘(광명시향토유적 제4호)는 광명시 일직동 산 26-7(KTX광명역 바로 앞 서독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요런 것도 있구요. 왠지 고서를 보면 고풍스러운 느낌이죠?
내용은 잘 모르겠다능 ^^;

아! 저도 대학생 때 서예동아리에서 활동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런 고풍스런 느낌을 내고자 화선지에 커피를 뿌려 그 위에 글씨를 쓴 기억이 있네요.
물론 위 '공신회맹록'이 조작되었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


 


광명시의 최초 학교는?

 

정답 : 서면공립보통학교입니다.


1907년에 운양의숙(현재 소하동 883번지)으로 개교했습니다.
이 사진 옆에 있는 "교장과 교사"라는 사진이 있습니다. 교장은 일본인이었고, 을사조약이 1905년이니까 그 이후의 현대식 학교를 세운것으로 추정됩니다.
뭐~~ 그 땐 그랬겠죠. 역사비평은 개인의 관점에 따라 다르니까 패쓰~


 

요 사진이 서면초의 최초 사진입니다. 사이버자료실에는 원본 사진이 있습니다.

그 사진보다는 아무래도 직접 찍은 사진이 좋을 것 같아서 올려봅니다. 각종 사진이 있는 홈페이지는 위에 기재해 놨죠?


 

우등상장입니다.

쳇~~ 우등상!! 전 초등학교 때 개근상도 받아 본 넘입니다.!! 후하하하
근데 왜 슬푸지? ㅜㅠ

암튼 연도에서 "서기"가 아닌 "명치"사십오년을 쓰네요. 오래 되긴 했습니다.
일본의 연도 기준이라 아쉽기는 하지만요. 역사를 부정할 수는 없겠죠.

언제냐... 서기 1925년이네요. 을사조약 이후로 우리 모두가 아팠던 시절이네요...
갑자기 슬퍼지니까 여기서 그만. ㅜㅠ


 

수업증서입니다. 도장이 무지허게 큽니다에 감동 한 표! ^^;


예전엔 글씨 쓰고 도장 찍고 각종 증명서에 이게 모든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위변조가 상당히 쉬웠을 것 같기두 하고... 물론 지금처럼 각 네트워크를 통한 확인이 어려웠겠죠.

요즘엔 주민등록등본도 인터넷으로 발급 받을 수 있는 세상인데. 사진 한 장에 많은 생각 해 봅니다.



 


 

광명의 문화재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놨죠.
광명시민필진님들 가 볼 데가 굉장히 많네요.

물론 이 글을 읽고 계실 많은 분들도요.

헛~~ 대부분이 충현박물관에 있다능....^^;


 

저게 옛날이라면 이정도도 어마어마하죠.
사진들이 참 많은 것을 말해주네요.
포장되지 않은 길과, 초가집, 그리고 그 때에도 안양천이 있었고 그 위에 다리가 있었네요.
자연은 느리게 그대로 흐르고 있는데 우리만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 같네요.

아닌가? 당시의 무슨무슨 최첨단 공법을 지금도 쓰고 있나? 기본 삽질 등의 내용은 변하지 않자나요 ㅋㅋ


 

철산동 지석묘는 너무 유명할 겁니다.


1985년 12월 24일 광명시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이며, 한강 이남에는 흔하지 않은 북방식 고인돌입니다.
원래 광명시청 근처에 있다가, 광명시의 자랑인 광명고등학교로, 다시 현재의 광명시민회관 옆으로 이전되었습니다. (출 처 : 네이버 백과사전)


민속놀이 및 농악, 신앙 등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광명은 무등**이 유명했다고 합니다.

요건 함 직접 방문해서 찾아보셔도 될 듯~~

이 외에도 1919년 3. 1 운동과 관련된 광명의 활동내역과 농민 운동으로 본 광명의 역사, KTX, 음악 도시 등 광명의 발전방향에 대한 청사진!
글구 광명시 전체의 조형물이 있었습니다.


 

물론 자료실이 있습니다.


하지만 광명에 대한 통계자료는 이 곳 자료실 보다는 도서관의 각종 통계자료가
이용하기 좋을 듯 싶습니다. 하필이면 중앙도서관에 자리잡아서... 자료실의 빛을 보기가 어렵네요. ^^

위 책은 민선3기 때의 자료입니다. ㅋ


 


사료관은 광명시민필진이 되어 광명시를 알아가던 중 시인 기형도를 찾기 위해 들렀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어마어마한 국가 예산이 투입된 국립중앙박물관은 아이들 손을 잡고 한 번쯤은 다녀왔겠지만 향토박물관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먹고, 자고, 입는 이 곳의 역사가 무엇인지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됩니다. 개울 하나하나 모여서 강이되고 바다가 되잖아요.

자신의 고장에 손 때 묻은 자료와 인물을 하루 정도 시간 내어 보는 것도 세상에는 큰 것만 있지않고, 작은 것도 있다는 것을 가르치게 되는 소중한 지혜일 것 같습니다.


※ 사료기증 제보
사이버 향토사료관 홈페이지의 참여마당을 이용하시면 간단한 절차와 함께 광명의 유물(광명시 관련 된 모든 자료)을 위 박물관에 보관할 수 있습니다. 물론 검토는 필요하겠죠?
전화 문의 : 02-2680-6142


제1기 광명시 온라인 시민필진
닭큐멘터리(신우수)
Blog. http://doccumentary.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