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장마와 폭염이 끝나고 청명한 가을 하늘에서 햇볕이 쨍쨍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맑은 하늘에 집에 가만히 있는건 복불복의 벌칙이나 다름없지요. 그래서 소하동 이웃 동네인 가학동에 있는 고인돌을 한 번 찾아가보기로 했습니다.
가학동은 소하동과는 달리 개발제한구역과 전답이 많아서 아직 농촌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입니다. 아파트와 건물로 둘러싸인 소하동에서 고작 3~4Km 떨어진 이곳에 오니 공기부터가 다르네요.
가학동의 공기와 경치는 좋았지만 고인돌을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대여섯 분에게 물어봤지만 딱 한 분, 밭에서 일하던 어르신만이 알고 계셨습니다.
"고인돌은 모르겠고, 지석묘는 벌말에 있으니 큰 길로 나가서 좌회전하고 다시 좌회전햐~"라고 하셨는데...
아무튼 그 분 덕분에 "벌말"이라는 단서를 잡아 한 번 더 길을 물은 다음에야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표지판 발견! 너무 감격하여 차에서 내려 클로즈 업 한 샷 찍었습니다. ^^
지석묘(支石墓)의 지석은 돌을 지탱한다는 뜻의 한자어이고,
고인돌은 돌을 고인다는 뜻의 순우리말인데 영어로는 돌멘Dolmen이네요.
영어에도 "돌"음이 들어가요. ^^ 신기합니다.
300m 표지판의 화살표대로 이동해서 200미터 표지판을 찾았습니다.
300m 표지판에서 바로 이 표지판 앞까지는 분명 100m만 더 오면 될텐데 희한하게도 그 이상을 헤맨것 같습니다. -_-#
이쯤에서 차를 세워두고 걸어올라가야 했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자 울타리가 없는 아담한 주택이 있었습니다.
그 집 마당, 어디서 본 듯한 동네 백구님이 마구 짖어댑니다.
고인돌 지킴이로 자원봉사하는지..(⊙_⊙?)
앗~ 표지판 또 발견!!! 이젠 150미터 남았다~
150m 표지판 옆에 경품 행사를 알리는 또 하나의 알림판이 있었어요.
이런 행사가 있었군요.
푸짐한 경품? 늦었다... 일년이나......ㅠ.ㅠ
고인돌을 찾아 올라가는 오솔길입니다.
오솔길을 가로질러 건너는 나무 그림자. 넌 어딜 가고 싶니?
어느 분께서 이렇게 세심하게 거리별로 표지판을 설치해주셨는지 참 친절하시네요.
30미터, 이제 다왔구나.
드디어 도착! 도착하자마자 방문객을 맞이하는 고인돌 안내문입니다.
자세한 내용을 한 번 봅시다.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이었다고 합니다
청동기 시대는 무기, 생산도구와 같은 주요 기구를 청동으로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이고, 석기 시대와 철기 시대의 중간 시대로, 우리나라에서는 기원전 1천년경에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청동기의 사용으로 생산력이 향상되고 강력한 군대가 조직되어 강대한 왕국이 출현했습니다.
이때, 청동기의 사용으로 생산력이 향상되고 강력한 군대가 조직되어 강대한 왕국이 출현했습니다.
- 다음 국어사전-
학창시절 열심히 외웠던 내용입니다. ㅋ 다시 보니 어쨌든 반가워요~ ^^
이 1호분은 다른 고인돌에 비해 살짝 더 높은 곳에 있고 따로 울타리가 쳐져있으며 그 앞에는 안내문과 안내석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탁자식과,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가학동 고인돌은 탁자식으로 원래 10기 정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1기만 남아 있다. 덮개돌의 길이는 2.9m이며 4개의 받침돌 중 3개는 무너졌다. 주변 지역의 고인돌에서 가락바퀴·돌화살촉·반달돌칼 등과 청동기시대의 집터 1기가 조사되었다.
이곳은 고인돌 위에서 학들이 놀았다고 하여 마을 이름이 가학동이 됐다고 하며,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마을의 번영과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가학동 고인돌은 탁자식으로 원래 10기 정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1기만 남아 있다. 덮개돌의 길이는 2.9m이며 4개의 받침돌 중 3개는 무너졌다. 주변 지역의 고인돌에서 가락바퀴·돌화살촉·반달돌칼 등과 청동기시대의 집터 1기가 조사되었다.
이곳은 고인돌 위에서 학들이 놀았다고 하여 마을 이름이 가학동이 됐다고 하며,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마을의 번영과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 문화재청 자료
근처 밭에서 일하시던 분들이 그늘을 찾아 그 아래에서 새참을 먹고 계셨습니다.
EQ 높은 남편이 인사를 건네자 한 잔 하라고 초대를 하시네요. 고인돌을 찾아온 우리 일행이 궁금증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일까요? 멀리서 찾아온 나그네와 술 한잔이라도 나누려는 시골 인심이리라 생각됩니다.
술 한잔은 사양하고 냉수 한 컵으로 목을 축이고 돌아온 남편~
우리 남편은 역시 EQ가 높아요~ ^^
학창시절 교과서와 참고서에서나 보았던 고인돌입니다.
그때 직접 와서 보고 공부했으면 더 잘 외워졌을텐데요~ ^^
고인돌 주변에는 낮은 울타리와 정원석이 깔려 있습니다. 가학동 지석묘의 전체 규모는 그리 크지 않군요.
전남 고창이나 화순에 있는 고인돌 유적지만큼 크고 다양한 고인돌은 볼 수 없지만, "광명에도 이렇게 선사시대의 지도자들 무덤을 잘 보존해 놓은 곳이 있다"라는 걸 확인하는 정도로 만족했던 외출이었어요.
지석묘에서 내려오는 길, 고인돌 주변 풍경입니다. 분묘, 밭, 비닐하우스, 소규모 공장 등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지석묘로 가는 진입로에는 이렇게 납골묘를 만드는 곳이 있네요.
들어갈 때는 보지 못했는데 나올 때 눈에 띄였습니다. 문중형인 듯 싶습니다.
청동기 시대나 지금이나 묘의 모습은 수천년이란 시간의 격차에 비하면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근데 이 납골묘들은 고인돌과는 달리 오히려 좀 음산해보입니다. -_-;;;;
하늘을 보니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천년 전, 고인돌을 만들고 내려오는 인부들의 이마에 구슬땀을 돋게 했을 기원전 1000년의 태양이 오늘 내 이마 위에도 내리쬡니다.
청명한 날씨에 한적한 곳에서 오래된 시간을 만나고 싶은 분, 한번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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