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습니다.
일에 스며들어 무감각해진 머리를 식히고 싶은 날.
매일 지나가는 일상을 허투루 흘리기 아까운 날.
그런 날은 음악 가득 담긴 휴대폰 챙겨 느린 걸음으로 퇴근을 시작합니다.
매일 반복되는 그 길의 풍경이 그럴 땐 평소와 다르게 꽤나 다양해집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길 좋아합니다.
신문을 읽고, SNS 친구를 뒤적이고, 말없이 벤치에 앉아 사람 구경하기도 하고,
사람이 북적이는 곳에 섞이고 싶어합니다.
사람이 북적이는 곳에 섞이고 싶어합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도 결국 나와 똑같구나.'라고.
철산역은 이를 만족시켜줄만큼 충분한 인파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도시라는 것이 살아 숨 쉬고, 움직이고, 달리고 있다는 걸 느끼는 시간.
이 시간이면 여지없이 지하철에서 쏟아진 사람들이 신호의 명령을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명령이 떨어지면 흩어진 걸음이 다시 모여 한 방향만을 주시합니다.
모두가 이 시간만큼은 그 길이 빨리 되풀이되길 바랄 겁니다.
이제 사람들은 버스로, 택시로, 걸음으로 뿔뿔이 갈라집니다.
물론 그 길 중간 어디쯤에서 다시 모이기도 할겁니다.
커피 or 맥주. 당신은 어느 것이 더 끌리시나요?
휘황한 상업지구를 뚫고 나오면 고층아파트로 시야가 꽉 막힌 길이 나옵니다.
하늘말고는 트인 곳이 없습니다.
답답해도 괜찮습니다.
밤 공기 위에 떠 있는 높은 건물의 위용이 꽉 막힌 시야를 사로잡아주기도 하니까요.
게다가 그 길엔 나란히 선 가로등이 지나는 이들을 의전해주기도 하고,
근린공원 같은 길 속에 또 다른 길을 걸을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재밌는 표정들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이쯤에서 퇴근길은 스스로 분위기를 한번 바꿔줍니다.
왕복 4차 하안로를 닮아 좁은 인도가 길게 이어집니다.
우리보다 늦게 출발한 버스가 곳곳에 사람을 떨궈내니,
길은 신기하게도 일정한 사람 수를 유지합니다.
걷다보면 이미 충분히 어두워진 길이 다시 밝아지기도 합니다.
사진 한 프레임에 담기 힘들만큼 넓은 사거리가 나타납니다.
여느 정류장이나 마찬가지로 이곳 사람들의 시선도 오로지 한 방향입니다.
어딜 가나 무언가를 기다리는 이들의 마음은 오직 한 가지일 겁니다.
여기서부터 길은 많이 한가해지기 시작합니다.
신기하게도 그 폭마저 줄어듭니다.
좁지만 차로의 소음에 방해받지 않을 길이 당분간 이어집니다.
지금부터는 속도전에서 벗어나 느리게 걷고, 느리게 숨 쉬기 좋은 길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시야도 방해받을 것이 없습니다.
러쉬타임은 끝났습니다.
여유로운 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지만, 길은 여기서 다시 한 번 분위기를 바꿉니다.
더더욱 한갓져서 혼자만의 시간으로 가득해집니다.
마침맞은 한내근린공원의 한적함은 귀에 꽂은 이어폰 음악 소리를 더 키워줍니다.
집이 코앞이지만, 공원은 조금 더 걸어도 괜찮을 여유를 줍니다.
신선한 바람 덕에 개운한 감흥을 즐기기에 충분합니다.
마음껏 사진 찍는 걸 즐겨도 누가 뭐라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누구의 간섭이 그리울 즈음, 일상에서 가장 행복한 퇴근길을 끝내면 됩니다.
퇴근길은 자칫 분주하고 치열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나름의 질서 속에서 흘러갑니다.
해가 지고, 달이 뜨고 이울고,
그렇게 모두가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하기 위한 정리의 시간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게 모두가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하기 위한 정리의 시간이기 때문일 겁니다.
퇴근이라는 짧은 일탈은 왠지 이것만으로 충분한,
봄 저녁의 감성을 대리만족 시키는,
딱 몇 곡만 리플레이 시키고 싶은 그런 길이었습니다.
[길 느려지다 - 삶의 속도를 늦추는 퇴근길 : 광명시청 ~ 철산역 ~ 광덕로 ~ 하안로 ~ 소하로]
글·사진 | 한량아빠(김도형)
Blog http://famlo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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