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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소통/사람사는 이야기

안양천이 가을을 맞는 자세

 

 

 

9월 둘째 주의 어느 날,

비 오는 늦은 오후였습니다.

빗줄기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안양천으로 산책을 나섰습니다.


햇무리 육교에서 바라본 대로는 벌써 퇴근하는 차량으로 분주했습니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마음이 울적하여 퇴근하는 차들의 행렬조차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안양천 징검다리 위에도 퇴근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습니다.



 

 

 

 

어떤 이의 발걸음은 내리는 비처럼 추적거렸습니다.

날은 점점 저물었고, 사람들의 발길도 뜸해졌습니다.



 

 

 

 

하나둘 켜진 가로등 불빛이

안개 자욱한 안양천변을 내리비추고 있었습니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던 산책로에 아무도 없는 적막이 찾아왔습니다.

불빛마저도 냉소적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거세어지는 빗줄기를 피해 나무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는 내가 서있는 곳까지

잠식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마른 땅 한 점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삼켜버린 빗줄기는

그칠 줄 몰랐습니다.



 

 

 


 빈 의자도 맥없이 젖어가고

하다못해 가로등 불빛조차 그 기세에 주눅이 들어보였습니다.



 

 

 


 비 오는 날 우산도 없이 안양천 주변을 서성이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심란했던 그런 날이었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하고 험악한 행동을 한 탓에

또다시 마음이 무거워진 그런 날...


마음은 아직도 다 자라지 못한 심술궂은 어린아이인데

그림자는 한껏 크게 드리워졌습니다.



 

 

 

 


안양천은 변덕스러운 빗방울도

바닥에 떨어진 시든 꽃잎도

사람들의 젖은 발걸음도

밤하늘에 소음만 남기고 사라진

비행기의 뒤꽁무니도

사람들의 기댄 어깨도

그리고

홀로 갈 곳 잃은 한 사람도

품어줍니다.



 

 

 

 

제각각 갈 길을 찾아 떠나는 세 갈래 길을 눈앞에 두고

김동리의 <역마>를 떠올렸습니다.

주인공은 세 갈래 길 앞에서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는 길을 택했지요.



 

 

 


저는 한쪽 길가에 피어있는 코스모스가 마냥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쉬이 발길을 떼지 못했습니다.

 

 

- 온라인 시민필진 도로시(김정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