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이~
고개 돌려보면 주변이 온통 아파트 단지인 곳.
그 안에는 섬처럼 주택들이 모여있는 동네가 있다.
온통 논과 밭이었던 하안동이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면서
필지를 분양받아 당시에는 꽤 유행했던 연립을 지어 놓은 곳.
단독 필지라 한다.
이 단독필지에는 동네에서 꽤나 연세드신 분들이 많이 사시는데
70은 보통이고 80 가까이 되시는 연세의 할머님들도 꽤 계신다.
내가 자리 잡은 매장 앞에서는 해가 뜨나 비가 오나 매일 이렇게
제대로 펴지지도 않는 허리를 가누고 유모차에 한대에 의지하며
하루에도 서너번씩 동네를 도시는 분들이 계신다.
단순한 산책길은 아니다.
동네에서 버려지는 재활용품들을 모아 고물상에 가져다 주시고는
용돈벌이를 하시는 것.
힘들게 왜 하시냐고 여쭈어보니
이렇게라도 다니는 것이 아무 것도 않고 계시는 것보다 더 좋으시단다.
좋아 하시는 것....
그 좋아서 하시는 것을 말리기도 쉽지 않다.
늘 매장앞을 이렇게 지나시기만 하시던 할머니.
어느날은 내게 무엇인가를 내미신다.
끙끙 힘겹게 내미신 것은 투명한 일회용 컵.
그 안에는 열개씩 테이프로 묶은 동전이 가득이다.
대뜸 미안하시단다.
무엇이 미안하세요?
"동전으로 가져와서..."
쭈꾸미 하나를 사가려 하셨는데
동전만 한가득 가져와서 미안하시단다.
"에이~ 할머니 별 말씀을 다 하시네요. 그냥 드셔요~ "
라는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역정을 내시려 하니 안받을 수도 없고...
해서,
"요거는요. 다 익혀진 냉동우동면인대요.
쭈꾸미 볶기 전에 물에 한소끔만 끓여서 물기 빼두셨다가
쭈꾸미 다 볶아졌을 때 함께 드시면 맛있을거에요."
고맙긴한데 돈이 지금 그것 밖에 없다며 손사레 치시는걸
"원래 드리는 거에요."라며 손에 쥐어 드렸다.
가시고 난 다음에 꽁꽁 묶여진 동전을 정리하느라
시간을 좀 쓰긴 했지만 좋은 마음이 든다.
맛나게 드셨으면 하는 마음도.
오늘도 예외없이 지나가신다.
"맛나게 드셨어요?"
"그럼~ 맛나게 먹었지.
쭈꾸미에 물을 한접시 부어서 우동을 끓여 먹었어.
아주 맛있게 먹었지."
웅? 쭈꾸미 볶음을 드렸는대 웬 우동을 끓여서?
손주와 드시는데 물이 많이 없는것 같아
끓여 드시려고 물을 한접시나 부으셨단다.
'할머니, 요건 볶아 드시는건데요?'
입에서 나오려는 말을 막고 말씀드린다.
"그렇지요? 끓여서 드셔도 맛나지요?^^"
하얗게 웃으신다.
조금 싱겁기는 했지만 정말 맛나게 잘 먹었노라고.
"다음엔요. 물 붓지 말고 그냥 볶아 드셔 보셔요.
그것도 많이 맛나거든요."
대화를 마친 후,
단숨에 멀어지는 느린 발걸음.
할머님 가시는 그 뒷길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다음에 오시면 양념도 따로 포장해 드릴게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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