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한 젊은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덕수궁에서 좋은 전시를 한다고 해서 너무도 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을 맡길만한 데도 없고 해서 아이들과 함께 택시를 타고 덕수궁 문 앞까지 직행했습니다.
내리려는 순간 어찌나 아이들이 울고 보채는지 그만 택시 탄 그대로 집에 되돌아왔답니다.
이런 어려움은 엄마들뿐일까요?
일 많이 하기로 소문난 우리나라 아빠들도 그림 감상은 남의 호사이기 일쑤입니다.
산 넘고 물 건너가듯해야만 그림을 볼 수 있던 시절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요즘 광명에는 오고 가다 그림을 만날 수 있는 생활 밀착형(?) 갤러리가 많이 생겼습니다.
따스함을 스르르 풀어놓은 듯한 어느 봄날, 철산역에서 철망산까지 그림 투어를 해보았답니다.
철산역 1번 출구로 나와서 걷다 보면 비교적 최근에 문을 연 갤러리 청림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갤러리 청림은 주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기획, 전시합니다.
이예나 큐레이터는 아이디어가 신선하고 창의적 요소가 많은 작가가 선정 기준이라고 밝힙니다.
전시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재미있겠다."며 아이들 데리고 오는 엄마들이 많은 편입니다.
특히 작년 말 주사기에 물감을 넣어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 전시는 호응이 높았다고 합니다.
<자료제공 : 갤러리 청림>
요즘 갤러리 청림에서는 이선화 개인전 <A confused memory>이 열리고 있습니다.
'혼란스러운 기억'이라는 의미일 텐데 어떠한 것을 표현한 것인지 그림 앞으로 다가섰습니다.
무심히 바라본 풍경 속에 불현듯 잊혔던 기억이 겹치는 어느 봄날을 그린 걸까요?
'바람 불면 저편에서 그대여 네 모습이 자꾸 겹쳐~~'라는 노래 가사처럼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림마다 파스텔 톤의 화사함 속에 기억의 쓸쓸함이 섞여있는 듯합니다.
반추상 그림이니 해석은 물론 관람자 각자의 몫이겠지만요.
"이 갤러리가 지역 작가와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 창구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이예나 큐레이터는 소망을 밝힙니다.
4월 전시 예정인 <파리의 정원>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프랑스풍의 은은한 색감으로 계절과 자연을 묘사한 작품들이라고 합니다.
벚꽃이 한창일 무렵, 유럽의 봄을 느껴봐도 좋을 것입니다.
조금 더 걷다보니 철산 상업지구에서 갤러리 앨리스라는 화랑 하나를 더 만났습니다.
클래식 음악이 울리는 실내에 경기 현대미술 작가 기획 초대전인 <연주 - 보다>가 전시 중입니다.
'봄이 오자 깨어나 연주하는 (삶의) 소리를 그림으로 보는' 전시입니다.
그림 앞에 잠시 섰습니다.
봄꽃을 줍는 여인은 입술도 가슴도 어느새 꽃 색깔입니다.
또 다른 작품인 크게 뜬 눈은 무어라 말하는 걸까요?
혹시 계절의 변화를 놓치지 말라는 당부는 아닐지요.
철산 상업지구를 벗어나 길을 건너고 고층 아파트 단지 사이를 걸어봅니다.
봄꽃이 필 듯 말듯한 날씨....
찬바람 속에 용케 먼저 핀 꽃을 반가워하다가 철망산로 하안 문화의 집까지 왔습니다.
2층 윈도우 갤러리에서는 <2015 NEW VISION 젊은 작가전> 1탄으로
<한동석 invisible 사진전>이 한창입니다.
<출처 : 하안 문화의 집 홈페이지>
평화로운 휴식 공간으로 흔히 생각하는 산에 잡동사니 쓰레기가 더해지니 묘한 불안감이 흐릅니다.
invisible, 단어 뜻처럼 풍경 너머 보이지 않는 것을 작가는 찍고 싶어 했는지 모릅니다.
윈도우 갤러리는 전시 공간이 복도 창문인 점이 특이합니다.
하안 문화의 집 이윤택 부장은 "전시 공간이 따로 없기도 했지만,
시민들이 문화의 집에 왔다가 복도에 걸린 작품을 봤으면 했다."고 합니다.
유럽에서는 이미 1990년대 이후 기존 화랑에 반발을 느낀 젊은 작가들이
건물 사이 등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며 시민들에게 다가갔다고 하네요.
하안 문화의 집에 온 사람들은 "뭐가 이리 달라졌어요?"라며
복도를 낯설어하고 그림을 응시합니다.
말하자면 프로그램을 들으려 혹은 차 마시러 우연히 왔다가
늘 알던 익숙한 복도에서 새롭고 놀라운 것을 보며 그것과 친해집니다.
이런 경험은 그림이 우리 곁에 있다고 말해줄 뿐 아니라
익숙한 일상의 것도 새롭게 보게 하려는
윈도우갤러리 2015년 전시 주제 'NEW VISION'과 일맥상통합니다.
햇빛이 비쳐들다 보니 윈도우 갤러리는 전시 공간으로 썩 적합하진 않습니다.
아무래도 작품이 어둡게 보이니까요.
이런 점 때문에 전시에 난색을 표한 작가도 있었다고 합니다.
마침 찾아간 날, 시의 지원을 받아 조명 공사가 예정되어 있어서
앞으로 작품 감상은 수월해질 듯싶습니다.
<자료제공: 하안 문화의 집>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젊은 작가들 작품을 연말까지 매달 새롭게 선보이겠다."고
이윤택 부장은 말합니다.
'센세이셔널한 작품들'이라고 표현하니 다양한 시각적 경험이 기대됩니다.
당장 4월 전시로 박찬국과 EAN의 회화와 미디어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어느 봄날, 짧은 산책을 하며 동네 갤러리를 돌았습니다.
목욕으로 몸의 더러움을 씻어내듯 문화를 누리다 보면 무거운 감정이 씻깁니다.
그렇다고 인사동까지, 예술의 전당까지 가긴 부담스럽습니다.
동네 갤러리에서 고단한 일상을 버티는 힘을 얻어보면 어떨까요?
아이 손도 잡고 꽃구경하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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