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개나리, 진달래, 목련꽃이 이상고온에 낚여 서둘러 꽃봉오리를 피워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난주 며칠간 꽃구경을 갔는데요.
봄꽃들의 향기가 아직 옷자락에 남아 있는 듯하네요.
예전 같으면 도덕산, 구름산으로 꽃구경을 갔을 터이지만
올해는 광덕산, 왕재산 등 가까운 동산으로 올라가
지천으로 흐드러진 꽃들과 실컷 눈 맞추고 왔습니다.
진달래 개나리의 뒤를 이어 이에 질세라 벚꽃도 만개했습니다.
그래서 벚꽃을 만나러 갔습니다.
광명에는 벚꽃의 명소가 제법 많더군요.
안양천을 비롯해 왕재산, 시민운동장, 13단지를 돌아 9단지 주변 등.
벚꽃들이 수다를 떠는 거리거리를 살짝 흩뿌리는 봄비와 벗하며 걸었습니다.
활짝 핀 벚꽃을 볼 때마다 궁금했습니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기에 이토록 수많은 입을 벙긋거리고 있을까?
비단 벚꽃만은 아닐 테지요. 화려한 봄꽃들 모두 수많은 입을 꼬물거리고 있더군요.
힘들었던 얘기, 기뻤던 얘기, 사랑의 얘기. 고통스런 기억, 잊고 싶은 기억, 그리운 추억들.
그리고 많은 사람의 다채로운 삶의 이야기가 버거워
해마다 꽃으로 쏟아내는지도 모릅니다.
그 쏟아지는 말들의 모습은 고층건물의 도도한 위용 앞에서,
때로는 낮은 차양을 내려다볼 수 있는 허공에서 공평하게 승화된 환희를 선사합니다.
그러나 환희의 순간이 길면 환희가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걸까요?
봄비와 손잡은 봄바람의 시샘으로
꽃잎은 제 나무를 떠나 꽃비로 내려야 할 숙명의 시간을 맞습니다.
낙화(落花)...
떨어진 꽃잎들 앞에서 그만 숨이 훅 막혀 왔습니다.
자동차 바퀴 옆에서 아슬아슬하게,
혹은 도로 옆 이곳저곳에 이르러 또 하나의 풍경을 이루었습니다.
지나는 이들의 발밑에서 한발 먼저 떨어진 목련과 함께 마주한 꽃송이들이 처연하네요.
벚꽃을 따라 홀린 듯 걷다 만난 자전거들입니다.
자전거를 던져두고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아하~여기 있었네요.
바람이 불어 꽃비가 쏟아지는 순간
아이들은 꽃잎을 잡으려 이리저리 팔랑팔랑 움직이다,
숨을 고르며 친구들과 눈 맞춤을 하고있습니다.
넘어뜨리고 온 자전거 생각은 까맣게 잊은 채 말입니다.
눈송이처럼 떨어지는 꽃잎을 잡으려 작은 손을 공중에 펴는 아이들도,
꽃잎 떨어지는 나무둥치 아래 키 작은 초록의 새싹들도
나뭇가지 끝 손톱만 한 싹들도 어여쁜 봄의 또 다른 꽃이겠지요.
벌써 벚꽃의 자리를 대신할 준비를 하네요.
하늘하늘 떨어져 내리던 꽃잎이 잠시 의자에 앉아 제 카메라에 눈을 맞춰줍니다.
이제 초록잎들이 꽃의 자리를 대신하겠지요.
(하략)
정희성님의 시(詩)가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왕재산의 산책길은 벚꽃잎의 낙화로 마치 하얀 서설이 내린 듯 아름답습니다.
쓰고 있던 우산을 내려 꽃잎들에게 들려주고
좀 이른 듯한 벚꽃 엔딩의 아쉬움을 입속에서 굴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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