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있느냐?
광명 청소년종합지원실 푸른정거장 '나다움학교'
제1기 광명시 온라인 시민필진
홍선희
“애들아 빨리 일어나! 어린이집 가야지!”
아침부터 쨍쨍하게 울리는 엄마 목소리에 저희 애들 눈이 휘둥그레 해집니다.
“엄마 오늘 회의(?) 가야 하니까 너희들도 서둘러!”
도대체 이게 뭔 말인가 싶으시죠? 저희 집에서는 제가 취재 나가는 것을 ‘회의’라 한답니다.
지난 6월 시민필진 위촉식에 아이들이 동행한 뒤 생겨난 말이죠. 제 또래 어린 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어른들만 모인 조용한 곳. 엄마가 숨 죽여 저희들에게 소곤거렸던 그날의 엄숙한 풍경. 이 모든 것들이 아이들 뇌리에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나 봐요.
그 뒤 제 아이들은 엄마의 취재활동을 ‘회의’라고 부른답니다. 또 ‘회의’에 간다고 하면 절대 따라간다 보채지도 않고 잘 다녀오라고 응원까지 해준 답니다. 과자 많이 가져오라는 부탁과 함께. ㅋㅋㅋ^^
추석연휴를 닷새 앞둔 9월 5일 월요일. 저는 대개 월요일에는 주말 내내 남편과 아이들에게 들볶였던 심신을 달래느라 소파에 널브러져 있곤 하죠.
그러나…. 이날은 제가 오전부터 서둘러 다녀온 곳이 있어요. 바로 광명시 청소년 종합지원실입니다.
광명시 철산2동 현충공원길 현충탑 바로 옆에 있어요. ‘푸른 정거장’이라는 애칭으로 통하죠. ‘청소년의 푸르름이 잠시 머물다 가는 자리’라는 뜻이래요. 이름만 들어도 왠지 설레고, 파릇파릇한 20년 전 그 시절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 좋은 느낌을 주네요.
광명시청에서 천변쪽으로 두 블럭 지나, 현충탑입구에서 비보호 좌회전을 해 조금 올라오면 오른쪽에 있다는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나선 길.
네비가 없어도 곧잘 찾아다니던 저였는데 오늘은 좀 헤맸네요. 주택가 골목이라 그런지 그 길이 그 길 같고 여기가 거긴 것 같고…. 10여분 돌고 돌아 드디어 초록색 건물 발견!
푸른 정거장에는 왜 갔냐고요?
이날 ‘나다움학교’ 2011년 2학기 ‘성장교실’ 개강식이 있었거든요.
2006년부터 시작된 나다움학교는
가정환경이나 형편, 심리적 또는 지적장애 등 개인적문제로 학업을 중단했거나, 무단결석, 비행 등 부적응으로 학교를 나온 청소년을 위한 곳이죠. 범죄를 저지르고 보호관찰소 생활을 하는 청소년들도 온대요.
솔직히 처음에는 ‘문제아’라 불리우는 말썽꾸러기들에 대한 호기심이 살~짝 발동을 해 취재에 나서게 됐어요. 하지만 꼭 그런 아이들만 오는 것은 아니랍니다. 일찌감치 자신의 진로를 정하고, 학교 과정을 빨리 마무리하려고 자퇴를 한 뒤 이곳에 오기도 합니다.
하긴 가수 보아나 서태지, 또 유명한 재즈피아니스트 진보라 양과 같은 연예인이나 예술가들도 고등학교를 중퇴했지만 그들이 문제아인 것은 아니잖아요.
아이들은 얼마나 있을지, 나를 보고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하는 시선을 보내지는 않을지 등등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개강식에 갔어요.
11시 정각에 개강식에 참석한 아이는 달랑 1명이네요. 한 시간을 훌쩍 지나 제가 이곳을 나설 때쯤에는 서너 명의 학생들이 더 왔어요. 그래도 기대 이하의 적은 숫자죠? 나다움학교가 인기가 없어서는 절대절대 아니랍니다.
사실 나다움학교는 아이들을 기다려 주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대요.
아이들 대부분이 제도권 교육시스템이나 획일화 된 강압적인 규율에 잘 적응하지 못해 학교를 나온 경우이다 보니 정~말 자율적이죠. 그래서 정해진 시간에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움이 많습니다.
개강식을 담당한 이곳 이진우 상담사님도 “지난주만 해도 12명이 참석한다고 했고, 어제도 4명이 온다고 했는데, 오늘 아침에는 휴대폰도 안 받네요”라며 그저 웃네요.
딱히 정해진 시간표 없이 생활하는 아이들인지라 사실 이 시간에는 한 참 ‘꿈나라 여행’(?)중인 친구들도 많답니다. ^^;;;
그래서 나다움학교 선생님들의 제1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시간을 지키도록 할 수 있을까”일 정도죠.
아이들에게 어떤 일을 시작하는 것과 마무리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약속된 시간을 지키는 훈련부터가 수업의 첫걸음이기 때문이죠. 심지어 아이들이 오지 않아 수업을 오신 선생님이 허탕을 치고 돌아가는 일도 있답니다.
그래서 이곳 선생님들은 초빙된 직후 아이들을 이해하고 기다려 줘야 하는 이유와 방법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거친 후 정식으로 선생님으로 활동합니다.
나다움학교에서는 13살부터 20살까지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로와 심리 상담부터 검정고시 학습지도, 체험활동 등이 진행돼요.
학습지도는 크게 고입반과 고졸반으로 나뉘어 검정고시준비를 하죠. 실력별 시간별 과목별로 소그룹을 만들어 수업을 한대요. 거의 개인별 맞춤 수업시간표라고 할 수 있죠. 일반 제도권 학교와는 확연히 다른 점이예요.
검정고시는 매년 4월과 8월 정기적으로 치러지는데, 10여 명의 선생님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서, 각 과목별로 지도를 해요. 특히 시험 2달 전부터는 자원 봉사자 외에 유급 선생님들도 모셔다가 집중 특강을 합니다.
나다움학교에선 하는 게 검정고시 준비가 전부는 아니랍니다. 인문학과 접목한 ‘감성더하기’ 수업도 1주일에 한 번씩 열리죠. 시와 소설, 문학작품 등을 읽고 토론 하며, 청소년들이 긍정적 자아개념을 갖도록 돕는 시간입니다.
또 ‘하루기행’이라는 수도권 일대 재래시장이나 문화유적지, 전시회, 박람회 등에 참석하는 체험활동도 해요. 사진교실과 접목해 학생들이 직접 사진을 찍고 인화해 의견과 소감을 주고받는대요. 이밖에도 캠프와 문화예술 활동 등 일반 학교의 특별활동처럼 자신의 적성과 특기를 찾아주는 수업들이 비정기적으로 진행된답니다.
학생들이 체험활동을 통해 제작한 작품들이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과 상담실에 전시되어 있죠.
어른들 말씀이 아이들은 열 번 된다고 하죠? 푸른 정거장 소개 브러셔에도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느냐’라는 도종환 시인의 말을 인용한 글귀가 있더군요.
이처럼 이곳을 통해 활짝 핀 아이들도 여럿이래요.
지난 2007년부터 3년을 나다움학교에서 보낸 한 아이는 당시 초등학교만 겨우 마친 상황에서 이곳에 왔죠. 그 아이는 중졸과 고졸 검정고시를 거쳐 지금은 광명시내 한 고등학교에 진학해 성실히 학교생활 중이라는군요.
또 나다움학교에서 고졸 검정고시를 치르고 수도권 대학에 진학한 학생도 있어요. 지방 4년제 대학 진학 후 편입을 위해 이곳에 상담 온 친구도 있고요. 고졸 검정고시 합격 후 각종 기술 자격증을 따고 취업을 한 친구들도 많대요.
이날 저의 갖가지 질문에 친절히 응해주신 이귀인 팀장님은 “나다움학교는 말 그대로 청소년이 가장 자신다운 모습을 찾아가도록 도와주기 위한 곳”이라며 그 존재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셨어요.
자존감을 상실하고, 학교 밖을 맴돌며 자신의 진로에 대해 갈피를 못 잡던 아이들이 서서히 말문을 열고, 열정을 드러내고, 검정고시 합격을 통해 성취감과 자신감을 되찾는 모습을 볼 때면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하십니다.
나다움학교를 찾은 학생들을 위한 상담실
취재 후 운전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이 세상 모든 엄마에게 그 어느 자식이 소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 소중한 자식들이 가능성을 채 보여주기도 전에 편견과 낙인으로 그들을 꺾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 세상에는 문제아도 엄친아도 없는 것 같아요. 다만 그 가능성을, 그 능력을, 그 재능을 보여주고 발휘하는 시기가 제 각각 다를 뿐이죠.
만약 학교 갈 시간에 거리를 헤매는 아이를 본다면 한심한 시선이 아닌 응원의 시선, 또는 빨리 제자리로 돌아가길 기도하는 시선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그들은 낙오자가 아니라 우리가 보듬고 가야 할 ‘자식’이자, 우리의 ‘미래’이니까요.
마지막으로 푸른 정거장에서는 경기도 교육청이 지정한 위탁형 대안학교인 ‘광명 푸른꿈비학교’도 함께 운영되고 있는데, 이곳은 중학교 과정 학교예요. 인가시설이라서 1년 과정을 마치면 학력도 인정됩니다.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동아리 모임과 갖가지 지원 프로그램들도 운영되고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홈피에 들러 확인하세요~
경기도 광명시 현충공원길 77 // 02-2619-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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