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1학년②
엄마가 항상 응원할게
광명시 온라인 시민필진
글·사진 홍선희
엄마도 1학년(1) - 내 생애 첫 학부모되기 < 클릭
D+1
등굣길이 엄마 손을 잡고 가는 아이들로 북적입니다.
저도 딸을 교실까지 바래다 줬습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이가 자리에 앉은 후에도 한참을 복도에서 서성거렸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자꾸 저를 쳐다보며 선생님께 집중을 못하더라고요. 내일부터는 과감하게 현관 계단까지만 데려다 줄 겁니다. 학교에 갔으니 모든 것을 학교에 맡기는 게 맞다 싶네요.
시간은 어느덧 흘러 낮 12시가 조금 넘었어요. 다시 학교로 아이를 마중 나갑니다.
학교 앞에서는 태권도, 미술, 영어 등 여러 학원에서 나온 분들이 물티슈, 화장지, 사탕, 볼펜, 캔 커피 등을 나눠줍니다. 주는 대로 마구 다 챙겨 담았더니 그새 한 보따리가 되네요.
저 멀리 선생님 구령에 맞춰 두 줄로 교문까지 걸어 나오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언제까지 아이를 마중가는 게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3월 한 달은 이렇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엄마들은 1학년 내내 바래다주고 데리러 나간다는데 저는 좀 강하게 키우렵니다. 대신 엄마와 손잡고 학교 다니는 3월 동안은 안전한 등하교 수칙에 대해 원칙대로 철저하게 가르쳐야겠죠.
‘길을 건널 때는…,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면…, 누가 먹을 것을 주면…, 현관 비밀번호를 누를 때는…’
주의 시킬 것이 한 두 개가 아니네요. 하도 험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세상이다 보니 아이에게 본의 아니게 부정적인 말만 잔뜩 하게 됐어요. 얘가 벌써부터 세상을 불신할까봐 한편으로는 씁쓸하네요.
집에 돌아오자마자 알림장을 확인합니다. 모든 학년이 그렇지만 특히 1학년은 알림장 확인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려와 달리 또박또박 아주 글씨를 잘 써왔네요. 칭찬을 듬뿍 해주었습니다.
갱지에 인쇄된 안내문도 여러 장입니다. 학교 홈페이지 가입안내, 우유 급식신청, 학부모 후원단체 가입신청 등 학기 초에는 날마다 안내문이 홍수를 이룹니다.
준비물도 많습니다. 파일, 색연필, 사인펜, 크레파스, 그림 일기장, 열 칸 공책, 미니 빗자루 등등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 보내야 합니다.
저는 대형마트에서 구입한 보호필름 견출지를 이용했습니다. 아빠가 이름을 쓰면 제가 견출지를 떼어내고, 딸은 제 학용품에 견출지를 붙이고. 이렇게 온 가족이 함께 준비하니 아이가 정말 좋아하고 학교생활에 더욱 흥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D+15
제 딸은 여전히 제 손을 잡고 학교에 다닙니다.
요즘에는 학교에서 교과서를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확인하고 시간표에 맞춰 챙겨 보내면 아이는 교과서를 사물함에 두고 다닙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 엄마들이 국어와 수학은 서점에 가서 따로 더 구입해 집에 두고 사용하더라고요. 저 역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처음 3월에는 교과서 진도가 거의 나가지 않습니다. 보통 ‘우리들은 1학년’ 과정을 배우는데 저희 딸 학교에서는 자체적으로 제작한 책으로 가르치더라고요. 교과수업도 ‘즐거운 생활’을 위주로 거의 놀이처럼 진행하는 것 같아요. 저희 딸이 요새 자주 부르는 노래는 유명한 바로 그 노래 ‘우리들은 1학년’입니다.
‘우리들은 1학년. 어서어서 배우자. 구경하는 참새들아 같이 배우자.’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니 제가 1학년에 입학하던 그때가 문득 떠오르더군요.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제가 벌써 학부모가 되다니 세월도 참…. 함께 추억에 잠겨보시라고 양가 부모님께도 전화를 걸었습니다. 딸아이가 직접 노래를 불러드렸습니다. “이 노래가 얼마만이냐. 벌써 노래를 배워왔느냐”며 어찌나 즐거워하시던지.
이즈음 학부모 총회, 학부모 후원회 발대식과 함께 학교급식 시식회가 있었습니다. 학교 밥이 생각보다 참 맛있었어요. 올해부터는 무상급식이라서 급식의 질이 떨어지지 않을까 내심 우려 했는데 안심해도 될 것 같습니다.
학부모 총회에 간 날은 아이 입학 이후 처음으로 아이 책상과 사물함을 둘러보았습니다. 뒤죽박죽인 사물함과 서랍 속을 보고 그저 웃음만 나더군요. 아직 1학년, 그것도 학교 다닌 지 채 보름밖에 안됐는데 집에서 챙겨 보낸 물건이 사물함 안에 잘 들어 있는 것만으로도 칭찬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어느 엄마들은 사물함을 죄다 정리해 주던데 저는 그냥 뒀습니다. 조금 늦더라도 스스로 하는 게 요령도 터득하고 배우는 과정이 될 테니까요.
D+30
이제 저는 아침에 현관에서 딸을 배웅합니다. 하굣길은 아직도 마중을 나가지만 가끔 아이 혼자 오기도 합니다.
딸은 제가 시킨 대로 학교에서 나오자마자 곧장 집으로 오더군요. 학교 앞에서 받은 사탕도 바로 먹지 않고 꼭 집으로 들고 와 엄마에게 확인 받은 뒤 먹습니다.
학교 보건실에 가서 일회용 밴드도 붙여봤고 도서관에 가서 책도 읽었다며 한바탕 수다를 떱니다. 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도 하고 모래놀이도 했다고 하는걸 보니 학교 내 웬만한 곳은 다 휘젓고 다닌 모양입니다. 이번 주는 자기가 급식 당번이라서 식당에 갈 때 제일 앞에 서서 간다고 의기양양합니다.
저는 ‘알뜰 어머니회’라는 학부모 후원단체에 가입을 해서 4월부터 활동을 하게 될 것 같아요. 며칠 후에는 엄마들의 ‘반모임’도 있을 예정이고요. 대개 반모임 자리에서 엄마들끼리 얼굴도 익히고 연락처도 주고받아요. 또 아이들 생일잔치 등 소소한 친목 모임도 주도하고 소풍이나 현장체험 등 학교 행사 때 선생님을 돕기도 해요. 물론 참석여부는 자유지만, 신학기에는 아이들끼리도 친해지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해 엄마들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같아요.
이렇게 ‘제 생애 첫 학부모 되기’ 프로젝트는 그럭저럭 잘 진행되고 있답니다. 제 딸도 “엄마! 나 토요일에도 학교 가고 싶어”라고 말할 정도니 이 정도면 학교 적응에 성공한 것 같죠? 아이는 제 생각보다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제가 제 딸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 같아 한편 미안하기도 하네요.
학교를 통해 좀 더 큰 세상으로 한 발 더 나가게 된 제 딸. 오늘도 환하게 비쳐온 아침 햇살을 맞으며 힘차게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섭니다. 이제부터는 걱정을 모두 떨쳐내 버리고 아이를 믿고 차분히 지켜볼 것입니다. 제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제 딸에게 잔소리도 좀 줄이고요.
“우리 딸! 엄마는 항상 널 응원한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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