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 소통/소소한 일상

길에 홀리다 - 2014년, 새터안로 17번길을 가다.

 


도덕산을 초록으로 물들이던 계절은

끝내 주체할 수 없는 녹음을 이끌고 도심으로 쏟아져 내렸다.

 

 

 

 

 


몇 해 전 나를 이끌던 초록 물결을 따라 도착한 새터안로 17번 길 위에서 2014년 6월.

나는 또다시 길에 홀리고 말았다.

 

 

 

 

 

카메라를 들자 앙증맞은 화단 벽화그림이 맨 처음 내 눈을 사로잡았다.
몇 해 전엔 보이지 않았던 꽃, 나비, 돌고래...

 

나는 오늘,

새터안로 17번길 위의 낮은 지붕 아래서 벽화 속 꽃과 나비와 돌고래를 만날 수 있을까?

 

 

 

 

 

좁은 골목이 시작되는 길 위에 서니

누군가의 작은 텃밭이 되어버린 욕조들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눈 부시다.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는 카메라를 앞장세우고,

어디에 있어도 눈 부신 해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보기로 한다.

 

 

 

 

 

새터안로 17번 길은 도덕산자락이 끝나는 곳(광명공고 옆)에 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길만큼이나 낮은 지붕들이 머리를 맞대고 들어앉은 판자촌 마을이 있다.

 

 

 

 

 

도덕산을 뒤덮고 쏟아져 내린 초록이 진하게 내려앉은 그 골목 안으로 들어가 보자.

골목 입구의 작약은 녹색 잎귀에 마지막 붉은빛을 토해내느라 여념이 없다.

 

 

 

 

 

그리고 그 옆 주목나무에서 바람에 흩어진 꽃향기를 찾아 날갯짓하는 호랑나비 한 마리를 만났다.

이 계절, 새터안로 17번길 위에서만 만날 수 있는 멋진 환영 인사일 것이다.

 

 

 

 


이곳 판자촌은 시내에서 집을 구하기 힘들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서 생겨난 마을이다.
골목에 있는 문 하나하나 마다에서 광명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걸 아는지

한낮 더위를 피해 골목으로 들어온 그림자들이 하얀 대문에 매달려 떠날 줄을 모른다.

 

 

 

 

 

또 다른 골목길이 시작되는 곳에서 만난 민들레 꽃.

 

바람에 날아간 홀씨를 그리워하며,

하늘을 향해 앙상한 줄기를 뻗어보는 민들레 꽃의 노란빛이 애처롭다.

(내 눈에 민들레는 그렇게 보였다.)

 

 

 

 

 

"○○야! 놀러 가자~~~"

친구를 부르는 목소리를 따라가 보니

해바라기 하는 빨래들만큼이나 들뜬 표정의 아이들이 있었다.

 

​"얘야.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

낯선 사람마저 반가운 듯 친구를 부르던 아이가 나를 보고 웃었다.

햇살 내려앉은 그 골목길 위에서...

 

 

 

 

 

"심을 때가 되어서 고추 모종을 심긴 하는데, 얼마나 따 먹을지는 하늘만 알고 나는 모르지."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냐는 부탁으로 시작된 대화는

아주머니가 화분 텃밭에 고추를 다 심고서야 끝이 났다.

 

낯선 사람에게도 따뜻한 새터안로 17번길 위에서는 만나는 사람 모두가 반가운 까닭이다.

 

 

 

 

 

또다시 걷다 보니 그 길은 하얀 매화꽃이 피고 진자리마다

초록 열매를 품은 매화나무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퍼즐처럼 나란하게 줄 맞춰 늘어선 블록들은 곧미녀를 또 어디로 데려가려는지...

나는 새터안로 17번길 위에 초록이 물든 골목길을 걷는다.

 

 

 

 

 

도덕산 능선과 맞닿은 새터안로 17번길 위에서라면

제멋대로 튀어나온 초록 물결과 마주칠 수도 있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고추 모종의 소유를 주장하면서도

 기꺼이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2014년 5월의 곧미녀 만큼이나 운이 좋다면 말이다.

.

.

.

.

.

혹은 2012년 새터안로 17번길 위의 곧미녀만큼...


녹음.

길 위에 흩날리며 손짓한다.

 

좁고 향기로운 골목으로 이어지는

그 길로 오라고...

 

 

글·사진 | 곧미녀(김경애)

광명시 온라인 시민필진 1기

Blog http://blog.naver.com/hvh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