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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소통/소소한 일상

숨은 광명 찾기(추억에서 쉬다, 걷다, 그리다) -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설월리를 가다

 

 

봄이 무르익어 가고 있습니다. 제리가 활동하고 있는 동아리에서 우리 마을 기행이라는 작은 기획을 했는데요. 제일 먼저 아직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설월리를 탐방해 보기로 했습니다.

 

4월 중순인데도 아직 꽃샘바람이 물러가지 않고 예쁜 옷을 차려입고 나온 처녀들의 옷 속을 파고듭니다.

 

 

 

 

먼저 도착한 제리는 일행을 기다렸어요.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에 바람은 상추 모종에 말을 걸고 있습니다. 햇빛과 바람 그리고 주인의 정성 어린 보살핌을 받아 윤기나게 자란 모종들, 참 싱그럽네요. 봄이 오면 많은 사람이 모종을 사러 나오는데 설월리 마을 입구에서 만난 꽃과 모종들은 더욱 생명력이 강해 보입니다.

 

 

 

 

자, 이제 본격적인 마을 탐방을 해 보기로 할까요? 광명은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지역이라는 건 다들 잘 아시죠?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 보면 농사를 짓는 곳, 옛 모습을 간직한 마을이 많이 있습니다.

 

 

 

 

1971년 제정된 도시계획법에 따라 서울 근교에 있는 시흥군 소하읍이 개발 제한구역으로 지정되었고 소하읍에 속해 있던 설월리는 마을 전체가 그린벨트로 지정되었답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지역보다 개발이 늦어진 까닭에 아직 옛 마을의 정취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그 용어조차 낯선 슬레이트 지붕과 식물도감에서 찾아봐야 할 만큼 희귀한 탱자나무도 볼 수 있었어요.

 

 

 

 

 

앨범을 들춰보면 만날 수 있는 추억처럼 정겨운 마을, 지금 서 있는 곳과는 사뭇 다른 모습인 아파트가 바로 앞에 보이는 곳, 흙 향기 머금은 마늘이 푸릇푸릇 자라고 있는 마을.

 

설월리는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자연마을로 그 명칭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조선 중기의 명재상인 오리 이원익이 관직에서 물러나 영당 말에 살면서 호미로 농사를 지었다고 하여 호미 서(鋤)자를 써서 서월리라 하였다가 발음이 변하여 서러리라 했다는 설이 있다.

 

또 하나는 이원익이 눈 오는 밤에 마을 길을 걸으면서 사색에 잠기곤 했다 하여 설월리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두 가지 설 중에 어떤 설을 더 밀고 싶은가요? 제리는 눈 오는 밤길을 걸으면서 사색했다는 낭만적인 설에 더 마음이 가는군요.

 

 

 

 

 

설월리는 빌딩 숲에서는 볼 수 없는 숲길은 물론 전통가옥들을 볼 수 있는 마을이지요. 그러나 세월이 흘러 마을을 떠난 이들이 하나 둘 생겨 간간이 빈집이 폐허로 남아 있습니다. 주인은 간데없고 추녀 밑 그림자와 옷 속을 비집는 꽃샘바람만이 낡은 기와 언저리를 맴돌고 있네요.

 

 

 

 

 

주인은 떠났어도 오래된 나무는 꽃눈의 몽우리를 부풀려 제 할 일을 하고 있어요.

 

 

 

 

 

양지쪽에서는 들꽃이 수줍게 작은 꽃을 피워내고 있네요. 이 꽃은 개불알 풀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주 작은 남보랏빛의 꽃. 김용택 시인의 동시에도 등장하는 들꽃이랍니다.

 

 

 

 

이 꽃은 제리가 어릴 적에 많이 보고 자랐던 익숙한 꽃인데도 이름을 몰랐지 뭐예요. 꽃다지라는 이름의 어여쁜 노란 꽃, 이 꽃 역시 김용택 시인의 동시에 나오는 꽃이지요. 이름을 들어도 자꾸 잊어버리는 제리가 '노다지, 노다지... 꽃다지' 하면서 외운 꽃 이름입니다.ㅋㅋ

 

 

 

 

마을을 오르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어요.이쯤에서 제리의 어린 날 삽화가 떠올랐답니다. 서울 간 엄마가 하루 이튿날이 가도 안 오셔서 날마다 목을 길게 빼고 엄마를 기다렸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어귀에서 흙길을 따라 동생 손을 잡고 그토록 기다리던 엄마가 오시는 게 보였어요.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으나 말도 건네지 못하고 길가의 풀만 쥐어뜯으며 꺼억 꺼억 울었던 기억이 저 길 위에 펼쳐졌습니다.

 

 

 

 

 

설월리에는 골목 길이 참 많아요. 누구라도 추억 한 장면 떠올리게 하는 골목풍경입니다. 술래잡기할 때 친구 찾아 뛰어가던 길, 혹은 사나운 수탉이 쫓아와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도망치던 그 골목, 혹은 좋아하는 동네 사내아이를 기다리며 골목 끝에 시선을 마냥 주기도 했던 곳. 겨울날 양지바른 담벼락에 기대어 물코를 흘리며 고구마를 베어먹던 추억이 떠오르시죠?

 

 

 

 

개불알 풀꽃은 담 일부가 되었어요. 저 담벼락은 꽃을 꼭 안아줍니다.

 

 

 

 

그런 골목을 지나 마을을 오르다 발견한 풍경입니다. 우리 일행은 모두 작은 개울을 건너 연탄재 앞으로 달려갔어요. 설월리에는 아직 연탄을 연료로 쓰고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시 구절이 떠오르네요.


또 어린 날 서울 친척 집에 놀러 갔다가 연탄가스를 마시고 화장실에 쓰러져 있었던 일, 고향을 떠나 도시생활에서 늘 함께했던 연탄가스... 이런 생각들이 호박 넝쿨처럼 줄줄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좋지 않은 기억이 더 많은 연탄재가 왜 반가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제리가 그때 화장실에서 깨어나지 못했다면! 으윽, 필진 여러분을 못 만났을지도~ㅠㅠ

 

 

 

 

 

설월리는 마을의 역사만큼 나무들의 연륜도 깊어 보입니다.

 

 

 

 

저 멀리 아파트가 보이지만 이곳은 대조적으로 기와지붕과 함석지붕이 낮게 자리하고 있어요.

 

 

 

 

 

이 마을에는 사찰과, 천주교 공소와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답니다. 이곳은 사찰 '금강정사'인데요. 연 1만 5,000여 명의 신도들이 찾는답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활발한 봉사활동을 펼친다고 해요. 광명시민 중 이곳의 신도들이 참 많을 것 같아요.

 

 

 

 

사찰 마당에 드리워진 오래된 나무 그림자가 왠지 엄숙하게 보입니다. 나무 그림자도 부처님의 자비로운 뜻을 새기고 있기 때문일까요?

 

 

 

 

밭 두둑에 푸릇푸릇 풀들이 돋아나는 봄, 멀리 보이는 하얀 비닐하우스 위로 설월리의 조용한 봄 햇살이 반짝입니다.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올랐더니 70~80년대 배경 드라마에서 봤음 직한 돌담과 초록 대문이 낭만을 불러옵니다. 저 초록 대문 집에 핸섬한 남학생이 살고 있을 것도 같고, 혹은 눈부시게 하얀 카라의 교복을 입은,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얼굴 하얀 여학생이 살고 있을 것 같은 그런 낭만적인 상상도 해보구요.

 

마당의 수도와 분홍자전거, 열린 대문...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층간 소음으로 얼굴 붉히는 일이 비일비재한 도심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평화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구불구불한 몸을 가진 오래된 감나무도 이 마을의 한 식구입니다.

 

 

 

 

민들레 꽃에 앉은 벌 한 마리도 평화롭네요. 일제히 한 곳을 바라보는 개불알 풀꽃에서도 설월리의 평화로움을 읽을 수 있었답니다. 북적이는 문명의 소음들로 가득한 도심에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고요와 안식이 느껴지시나요?

 

 

 

 

 

마을 위쪽을 다 보고 난 후 오르던 길을 지나 왼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더니, 불규칙의 미가 돋보이는 오래된 돌담이 우리를 맞아 주었어요.

 

 

 

 

 

벽을 따라 뻗어 간 담쟁이 줄기와 돌담의 틈새에 자리 잡아 봄을 피워낸 제비꽃이 연필 스케치처럼 정겹습니다. 반면 피워내는 것들과는 반대로 지는 것의 미도 발견했지요. 제 할 일을 다한 깍지의 처연함. 소중히 쓰다듬어 주었어요.  

 

 

 

 

 

지금 설월리에는 찬란한 봄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소 좁은 듯한 화분 안에서, 쏟아질 듯 피워내는 목련 꽃. 봄꽃축제가 따로 없지요?

 

 

 

 

설월리 여행 잘하셨나요?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조금만 눈길을 돌려 보면 우리 광명에는 잔잔한 여행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많답니다. 사실 제리도 광명에 오래 살았지만 모르는 곳이 많더라구요.

 

앞으로 설월리 뿐 아니라 또 다른 곳을 찾아 제리가 구석구석 여행을 하며 광블을 통해 안내해 드릴게요. 다음 여행지는 어디일지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휴식이 필요한 분 모두 오세요. 따사로운 봄 햇살과 연둣빛 의자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옛 마을로~^^

 

 

 

글·사진 | 제리(이현희)

광명시 온라인 시민필진 2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