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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소통/소소한 일상

미나리꽝에서 고향을 느끼다 - 목가적인 풍경이 아름다운 옥길동 미나리꽝

 

 

 

 지난 달, 추석을 맞아 고향에 다녀오신 분들, 고향 냄새 흠뻑 맡고 오셨나요? 저도 고향에서 따스함과 풍요로움을 맛보고 왔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또 다시 고향이 그리워지기 마련이지요. 저는 그럴 때면 광명시 옥길동에 있는 미나리꽝을 찾아가서 고향의 정취를 느끼고 온답니다.
 
옥길동 미나리꽝은 저희 아파트를 벗어나서 10분 정도만 걸으면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농지정리가 되지 않은 구불구불한 논둑길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라서 가까이서 사시사철 바라보고 싶은 곳이랍니다.

 

 

 

 

 

 

 아지랑이가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파릇파릇한 미나리 싹이 올라올 무렵부터 미나리꽝을 찾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해요. 정확하게 말하면 미나리꽝을 찾는다기보다는 미나리 논두렁에서 나물을 캐는 것이지만요. 이제 나물을 캐는 사람들은 아가씨에서 아줌마들로 바뀌었지만, 고향의 옛 정취는 여전히 물씬 풍기지요.
 
 

 

 

 

 

 점심을 먹으러 간 주인을 기다리는 삽자루가 따스한 햇살을 받고 있는 봄날입니다.


 

 

 

 

 

 나물 캐는 아줌마들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미나리꽝에도 일하는 사람들이 한둘 눈에 띄게 되지요. 아직은 꽃샘 바람이 옷깃을 단단히 여미게 하는 날씨라 그런지, 일꾼들의 손도 바지 주머니 깊숙이 파고들었네요. 어릴 적, 저희 아버지는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맨발로 논둑길을 걸어 일터로 가셨었는데, 요즈음 사람들에게는 허벅지까지 오는 따뜻하고 긴 장화가 있어 추위 걱정이 없네요. 힘든 일을 하는 일꾼들의 어려움을 작게나마 덜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아버지께서 하시던 봄날의 일거리 중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논둑을 정비하여 빗물을 가둬두는 일이었어요. 옥길동 미나리꽝도 그런 모양입니다. 사람만 달라졌지 삽으로 도랑이나 논의 진득한 흙을 한 가득 퍼서 논둑에 바르는 모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행여나 지난 겨울에 들쥐가 구멍이라도 내놓았으면 큰일이다 싶어, 무거운 농기구로 논둑을 두드려 정비를 하고 천수답인 논에 물 가두기 준비를 하는 모습도 똑같습니다.

 

 

 

 

 

 

 그렇게 물을 가두는 철저한 준비가 풍년을 기약하는 첫걸음이란 생각에, 추운 날씨에 다리가 하얗게 트는 줄도 모르시고 우리 부모님들은 열심히 일하셨지요. 마음속으로는 훗날 자식 농사까지도 풍년을 기원하며 말입니다.

 

 

 

 

 

 

 주인과 일꾼들의 정성으로 자란 미나리는 봄이 무르익을 쯤에 처음으로 수확이 되어, 우리의 밥상을 그 향기로 가득 채웁니다. 옥길동의 미나리는 일 년에 여러 차례 수확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에 곡식이 무럭무럭 자라길 기원하며, 농약을 뿌리고 물을 주면서 자식 키우듯 곡식들과 함께 하셨던 아버지의 일터가 생각나는 미나리꽝의 모습입니다.

 

 

 

 

 

 

 봄이 지나 여름이 와도 미나리꽝의 허수아비는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네요. 미나리가 새들을 불러오게 하는 곡식이 아닌지라, 미나리 논두렁 속 허수아비의 존재가 잘 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옛 고향의 드넓은 들판을 생각하면 허수아비가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우리 추억 속에 아름답게 남아있는 형상이다 보니, 그가 없는 논두렁은 왠지 상상이 가질 않습니다.

 

 

 

 

 

 

 미나리꽝 논두렁 한 편에는 이 의자가 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아마도 주인의 의자일 것이란 생각은 들지만, 한 번도 누군가가 이곳에 앉아있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네요.

 

 

 

 

 

 

 여름이 오고, 미나리를 베어냈던 그 논에서 일꾼들은 다시 한 번 풀 뽑기를 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품사람을 사서 여름철 나락 논에 김매기를 하던 모습과 같아 보입니다. 마지막 김매기를 하던 날, 우리 집 일꾼은 소를 타고 온 동네가 시끌벅적하도록 요란하게 집으로 돌아오고, 마당에서는 이슬이 옷을 적실 때까지 한바탕 술판이 벌어지고는 하였지요.

 

 

 

 

 

 

 일을 하다가 잠시 허리를 펴고 먼 산을 바라보는 모습도 예전 아버지의 그 모습과 무척 닮았는데, 자세히 보니 이곳의 일꾼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니네요.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온 사람들인 듯 합니다. 그들이 우리 농촌의 힘들고 어려운 일을 책임지기 시작한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특히 경기도 쪽은 아래지방보다 더 많은 외국인들이 있다고 합니다.

 

 

 

 

 

 

 예전 우리네 아버지들은 맨손으로 일을 하시느라 손톱 밑이 깨끗할 날이 없어 가슴이 아팠지만, 지금은 일꾼들이 이렇게 고무장갑을 끼고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보기 좋습니다. 그러나 저희 아버지가 이 모습을 보셨더라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핀잔을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미나리꽝에서는 농약은 절대 치지 않고 사람의 손으로 직접 풀을 뽑는답니다. 그럼 아까 보았던 농약 치던 줄은 무엇이냐고요? 그것은 논두렁에 나는 잡풀을 제거하기 위해 치는 것이었답니다.
 

 

 

 

 

 

 미나리꽝을 종종 다니면서 미나리 베는 모습을 한번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좀처럼 그 일꾼들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 곳을 매일 찾는 것이 아니라 고향이 그리울 때나 부모님이 보고 싶을 때 찾다 보니 그들과 마주칠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수확 중인 미나리꽝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반갑던지, 저는 쉬지 않고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답니다. 아침 8시 30분, 나름 일찍 간다고 갔지만, 벌써 일꾼들은 보이질 않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아침을 먹으러 간 것 같네요.

 

 우리네 고향의 일손들도 언제나 안개 자욱한 이른 새벽에 일을 하러 나갔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학교를 갈 때쯤이면 아침을 드시러 오곤 하셨지요.

 

 

 

 

 

 

 잠시 사진을 찍으며 주위를 둘러보다 보니, 어느새 일꾼들이 아침을 먹고 다시 일터로 돌아왔습니다. 일꾼들의 손놀림이 금세 분주해졌네요. 모자에다 앞치마까지 완전무장을 하고 일하는 그들도 머나먼 타국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우리 아버지들은 우리네 밥상 위에 올라오는 먹거리를 책임지는 일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을 겁니다. 4, 50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이나 미국으로 일을 하러 갔으니까요.

 

 

 

 

 

 

 연하고 부드러운 미나리는 어린아이 다루듯 살살 조심스럽게 베어내야 한답니다. 그렇게 베어낸 미나리는 뿌리 부분의 필요 없는 부분들을 추려내는 과정을 거친 다음, 작업장에서 상품으로 탄생하겠지요.

 

 

 

 

 

 

 목가적인 풍경이 아름다운 옥길동 미나리꽝. 앞으로 얼마를 더 이곳에서 살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이곳에 사는 동안에는 자주 저 논둑길을 걸을 것 같습니다. 특히 고향이 보고 싶을 때나 부모님이 보고 싶을 때 말입니다.

 

 

 

글·사진 | 렌즈로 보는 세상(김분호)

온라인 시민필진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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