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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소통/사람사는 이야기

기품과 절조의 완성 - 중요무형문화제 제4호 갓일 입자장 박창영 선생을 만나다

 

 

 

내가 어릴 적, 한학을 하시던 아버지께서는 무더운 여름에 집안이나 문중의 대소사가 있는 날이면 의관을 정제하시고 집을 나서셨다. 그 당시 의에 해당하는 옷은 풀 먹인 하얀 모시 바지저고리에 모시 두루마기였고, 관은 까만 말총갓이었다. 그 갓은 씻을 수도 없기 때문에 외출에서 돌아오시면 살살 털어 말려서 갓집에 넣어두시곤 했다. 관리가 까다로운 만큼 소중히 다루던 아버지의 애장품이기도 했다. 늘 선비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아버지 덕분일까? 갓은 나에게 선비를 나타내는 표상과도 같았다.

 

그러다 얼마 전, 내게 그런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갓을 만드시는 분이 광명시 소하동에 계신다는 걸 알게 되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중요무형문화재 4호 갓일 입자장 박창영(70)선생의 공방을 찾기로 했다.

 

 

 

 

무더운 날씨에 더욱 정신이 혼미해져 공방을 제대로 찾지못하는 이 사람을 친히 마중까지 나오셔서 공방으로 안내한 입자장님. 먼저 공방 옆 작은 전시실로 안내하셔서 사모님께 시원한 음료수를 부탁하시고는 4대째 이어오는 가업 '갓일'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내셨다.

 

"내 고향인 경북 예천 돌테마을은 전체 80여 가구 가운데 절반가량이 갓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만든 갓은 전국에 유통되었어요. 처음 갓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17세 때로,  워낙 손재주가 많았던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갓일을 배우게 되었어요.

 

예천에서 갓을 처음 배운 후, 대구에 있는 갓방으로 옮겨 일을 하면서 실력을 갈고 닦았지요. 그리고 25세가 되던 해에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내 이름으로 갓방을 차렸어요. 60년대만 해도 갓 수요가 상당했어요. 특히 가을 시제 때가 다가오면 없어서 못 팔 정도였고,  고향마을 근처 장에 가면 갓을 파는 상인을 여럿 만날 수가 있었어요.  물론 안동신시장에도 팔러 갔지요.

 

그런데 30여 년 전부터 갓 장사는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갓을 찾는 사람도 거의 사라졌어요. 그 때 방송국에서 갓을 주문하기 위해 가끔 우리 마을을 찾곤 했는데 당시에는 사극이 많이 방송되던 터라 방송국에 납품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무작정 내가 만든 갓을 들고 방송국을 찾아가 거래 요청을 했어요. 반응은 예상외로 좋았고 그 자리에서 즉시 거래가 성사되어 계약을 맺었어요.

 

그리고 1978년에 거처를 아예 서울로 옮기고 본격적으로 방송국에 납품하기 시작했어요.  현재 드라마와 영화 등 사극에 등장하는 갓은 대부분 내가 만든 갓이지요."

 

선생은 '갓일'을 하실 뿐만 아니라 갓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셨다. 그런 자부심의 바탕이 된 선생이 만든 전시실의 갓을 구경해본다. '세상에나 갓의 종류가 이렇게 다양하다니....' 예전 아버지가 쓰시던 검고 작은 갓만 보던 나는 신기한 갓들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주립(朱笠)

 

대나무와 말총으로 만든 기본 갓에 붉은 색 견사(絹)로 표면을 씌운 갓. 군복인 융복(戎服) 위에 주로 착용하였다.

 

 

 

 

 

백립 (白笠)

 

대나무와 말총으로 만든 기본 갓에 흰 견사로 싼 갓. 주로 국상 때 착용하였다. 삼년상을 치르고 담제(3년상을 치른 후 두 달이 되는 날에 지내는 제사)에 이르는 기간에 사대부가에서 사용하기도 한 갓.

 

 

 

 

여기 작은 백립은 아드님(형박)이 만들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것 가운데 하나가 ‘갓’이었지요. 태풍이 치거나 비가 오면 옷이 젖는 것은 상관하지 않고 갓을 벗어 도포자락에 숨겼거든요.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이 만지지 못하도록 방안 가장 높은 곳에 걸어두곤 했어요.
 

특히 방에서 어디가 상석인지 모를 때는 갓이 걸려있는 방향을 보면 된다고 할 정도로 갓은 단순히 멋을 내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지요."

 

 

 

 

박쥐 문양 갓

 

총모자를 대울로만 만든 죽사립에 박쥐문양을 넣은 갓. 박쥐는 번영과 행운을 상징하였기 때문에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즐겨 사용하였다.

 

 

 

 

선생이 고향 예천에서 갓을 처음 배웠을 때는 기본 갓만 배웠다. 그러나 서울로 올라와서 유물자료 등을 공부하면서 다양한 갓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지금 전시실에 전시된 갓들이 거의 선생이 복원한 갓이다.

 

 

 

 

옥로립(玉鷺笠)

 

백로가 비상하는 모습을 조각한 옥을 흑립의 머리 부분에 장식한 갓. 백로는 청백리의 상징이다.

 

 

 

불에 탄 철종어진. 이걸 보고 재현한다. 

 

“가끔 과거 자료를 들고 와 갓을 똑같이 재현해 달라는 사람들이 있었지요. 그런데 사진만 보고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난감했어요. 그러나 꾸준히 연구하고 실패를 거듭한 결과 하나씩 재현하는데 성공했어요. 특히 철종 갓의 경우 총모자를 짓다가 실패하기를 여러 번. 워낙 만들기 까다로워 지금까지 총 5개밖에 만들지 못했어요.”


 

 

 

전립(氈笠)

 

전립(戰笠)이라고도 부르는 조선시대 무관의 제모(制帽). 이 전립은 궁중유물전시관에 소장된 철종어진에 나오는 것을 보고 재현한 것이다.

 

 

 

 

19세기 진사립


진사립은 대나무와 말총으로 만든 대우와 양태에 촉사(명주실)를 덧대어 붙인 갓이다. 이 진사립은 최상품의 조선 말기 갓으로 대우의 높이가 높고 지름이 좁아 보이는 특징이 있다.

 

 

 

 

 탕건(宕巾)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갓 아래 받쳐 쓰던 모자. 말총으로 앞은 낮고 뒤는 높게 턱이 지도록 만들었다.

 

"갓은 조선시대부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모양의 갓으로 만들어졌어요. 갓 만들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크게 3단계로 분업화되어 있어요. 말총과 대나무를 사용해 모자부분을 엮는 '총모자장'과 머리카락만큼 대나무를 얇게 쪼개어 차양을 만드는 '양태장'이 있고요. 이 둘을 결합해 갓의 기본 형태로 잡아 얇은 대나무 세죽사(細竹絲) 가닥마다 명주를 입히고 먹칠과 옻칠을 해 최종적으로 갓을 완성시키는 역할을 하는 '입자장'이 있어요. 우리나라에 입자장은  단 두 명뿐이고, 갓일을 전업으로 삼는 사람으로는 제가 유일하지요.

 

까다롭고 섬세한 작업의 공정을 익히는 일에만 10년으로도 모자랄 정도이고, 무엇보다도 일일이 인두질을 하는 작업은 너무 힘들어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일을 배우겠다는 사람을 찾기도 어려운데 고등학교 때부터 '갓일'을 틈틈이 도와오던 장남 형박(38)이가 5대째 가업을 잇겠다고 결심을 하니 얼마나 고마운지요. 홍익대학교에서 의상학을 전공하고, 단국대에서 전통의상학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현재는 갓 제작기법 등과 관련해 박사논문을 제출한 상태예요. "

 

 

 

 

대우 부분을 만드는 틀과 말총

 

말총(말 꼬리털)은 갓의 대우 부분에 사용되는 재료다. 대우를 만들 때 날줄은 길이가 긴 말총을 많이 사용하고 길이에 구애를 받지 않은 절임줄은 쇠 꼬리털을 많이 사용한다.

 

 

 

 

말총으로 만든 대우

  

많은 멋진 갓을 구경하고, 선생이 평생 힘겹게 만들어 온 갓을 만드는 과정을 살펴본다. 죽립을 만드는 과정이다.

 

 

 

 

3년 정도 된 대나무 껍질을 벗겨서 콩깍지를 태운 잿물에 8시간 정도 삶는다.

 

 

 

 

삶은 대나무의 겉껍질을 벗기고,

 

 

 

 

칼로 아주 미세하게 칼집을 내어

 

 

 

 

 칼집을 따라 잘게 쪼갠다.

 

 

 

 

그러면 요런 실처럼 가는 죽사가 된다.

 

 

 

 

가는 죽사로 머리가 들어갈 대우 부분도 아교를 붙여 만들고,

 

 

 

 

그늘을 만들어주는 갓의 양태도 만든다.

 

 

 

 

트집 잡기로 갓의 양태를 마무리한다.

 

 

 

 

갓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은 트집 잡는 일이다. 양태를 인두로 지져서 오그라지도록 휘어잡는 것을 트집 잡기라고 하는데, 우리가 흔히 쓰는 ‘남의 조그만 흠집을 꼬집어 공연히 귀찮게 군다.’는 '트집 잡다'의 어원이 갓 만들기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인두가 너무 뜨거우면 자칫 대올이 탈 수 있으니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차양이 너무 평면으로 뻗어도, 지나치게 오그라들어도 모양이 좋지 않기에 고도의 숙련을 요하는 작업이다. 부드럽고 수굿한 곡선을 이루어내는 양태의 모양새가 되려면 트집 잡기를 잘 해야 한다.

 

 

 

 

양태와 대우에 세죽사로 마무리한 후 대우와 양태를 붙이면 갓의 모양이 완성된다.

 

 

 

 

완성된 갓에 마지막으로 먹물을 칠하고 옻칠을 입히면 완벽한 갓이 된다. 아교풀이나 옻칠을 할 때 구멍이 막히지 않도록 입김으로 불어 대는 건 갓에 혼을 불어넣는 일에 다름 아니란다. 이렇게 선생의 혼이 담긴 갓 하나가 탄생한다.

 

 

 

 

아버지의 갓에 대한 추억으로 찾아뵈었던 중요무형문화재 4호 갓일 입자장 박창영 선생. 애써 힘들었다고 말씀을 하시지 않으셔도 공방에 있던 두꺼워진 먹물을 칠하고 옷칠을 입히는 틀만 보면서 인고의 세월을 느낄 수 있었다.

 

광명시에 이런 훌륭한 분이 살고 계신다는 것만도 축복일 터인데 공방으로 가는 길에는 안내판도 하나 없는 게 안타까웠다. 그만큼 사람들에게서 잊혀 간다는 뜻일 게다. 이제 노년을 광명에서 보내시기로 마음먹으셨다니 안내판뿐만 아니라 멋진 전시실이라도 만들어 드렸으면 하고 바랐다.

 

 

 

 

글·사진 | 렌즈로 보는 세상(김분호)

온라인 시민필진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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