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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소통/사람사는 이야기

오리로841번길 - 길 위에 사람이 산다

 

오리로841번길
길 위에 사람이 산다

광명시 온라인 시민필진
한결(이창우)
Blog. http://blog.daum.net/alwayslcw
쉿! 가만히 귀 기울이면


 


오리로 841번길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의 주소다.
주소는 주소인데 분명 사람이 살고 있는 그곳이
번지수가 어색하다.

841번 [길]

1호 2호가 아닌 [길]이다.
분명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인데...

광명 경찰서 앞의 삼거리에서 산자락 쪽을 바라보면
재개발이 끝나 수십층의 고층 아파트가 들어 선 곳
아래에 위치한 광덕 초등학교가 보인다.



 


그곳에서 뒤로 돌아 바라보면 보여지는 지명으로는 분명
[길]이 틀림없는 곳 [오리로 841번길]

그러나 이 길 위에는 분명 사람이 사는 집들이 빼곡하게 있어
아침에는 다들 바쁜 걸음으로 나서고 저녁이면 피곤한 몸을
누이기 위해 돌아오는 포근한 휴식처로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번듯하지는 않다.
얼기설기 늘어진 전깃줄이며 비가림용으로 얹혀진 두터운 지붕용 비닐
그리고 그 비닐이 날아가지 않도록 얹혀진 무거운 타이어와 돌덩이들.

이곳에서는 누가 사는걸까?




 

 

 


우편물은 좌측 우편함으로...

골목을 기웃기웃 거려본다.
사람 하나 지나갈만큼 좁은 그곳에서도
사람 사는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다.




 


조금 너른 길을 따라가 본다.

지나는 사람들도 별로 없는 시간
뒷짐 진 경찰관 한분이 한갓지게 앞서 걸어가고
그 끝자락에는 어릴적 기억을 고스란히 살려주는
오래된 공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를 깎기에 아주 최적으로 환경을 만들어 놓고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이 정확한 손놀림으로 순식간에
타다닥 커트하고 머리감는 비용도 없이 칠천원을 주고 나오면 되는
샤보이, 블루클럽, 까꼬뽀꼬 이런이름이 아닌 정맥과 동맥을 상징
한다는 이발소의 싸인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이발소.

어릴적 이발하는 것이 무지하게 싫어 요리조리 도망다니다가
결국엔 붙잡혀 가 이발 의자위에 나무판을 대고 키를 높여
퉁퉁부은 얼굴로 머리를 깎을때 운 좋은 날엔 아저씨가
사탕도 몇개 쥐어주며 살살 달래주던 그 이발소.

언제부터인지 오래 걸리지 않는 기계로 웅웅거리며 밀어내고
찰칵찰칵 가위질 소리 몇번내면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일어나야 하는 남성전용 프랜차이즈 미장원을 다니게 되었고
그 후론 긴 시간 이발사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어가며
그리 급할 것 없이 차알칵 차알칵 소리내며 몇번이고 다듬어내 주던
이발소를 찾지 않게 되었는데 오늘 그 이발소를 들어서려 한다.




 


그리 키가 크지 않은 내가 들어가기에 딱 맞는 높이의 문을 열고
들어선 곳엔 어르신 한분이 이발 중이시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바쁠것 없이 나누시는데 내가 들어서니
잠시 돌아보며 네~ 하시고는 다시 한담을 나누며 머리를 손질 하신다.

나도 바쁠것 없다.
앉아서 이리 저리 살피다보니 요즘 보지 못한것들이지만
눈에 익은 모습들이 보인다.




 


예전엔 어딜가나 하나쯤은 벽에 걸려 있던
마음에 덕이 되는 문구 액자.




 


자랑거리로 걸려있는 표창장과 증서들.




 


얼마나 잘 깎았는지 더이상 깎을것이 없는
동자승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




 


얼마나 오래 쓴건지 알수도 없는 드라이기.




 


면도를 하기 위해 비누거품을 내는 통
어릴땐 이것도 싫었다.
추운 겨울엔 보통 따듯한 물로
거품을 내서 바르고 솜털을 깎아 주었는대 종종 차가운 물로
그냥 거품을 내서 깜짝 깜짝 놀라게 했으니까...




 


그리고 머리를 감겨줄 세면대.
조그만 조로에 따듯한 물을 담아 머리를 감겨 주시는데
아주 기분이 상쾌해진 머리 감아주기가 되었던...




 


내가 앉아 머리를 깎았던 아주 오래된 이발의자.
오래는 되었지만 여전히 동작은 충실하게 잘 되어
면도를 할때 의자 등받이를 뒤로 넘기는대 전혀
문제가 없었던... ^^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찍은 몇장의 사진들
그러나 내가 궁금했던 것이 아직 남아 있었다.

하루에 몇분이나 오세요? ㅠㅠ;

많으면 하루에 네다섯분 오신단다.
명절 대목때는 그보다 더 오지만
보통 그렇단다.

그것도 대부분은 아주 오래된 단골분들 이시고
아주 가끔은 나처럼 그냥 오는 사람들도 있고...

그래서 늦게 열때가 많고 난방도 잘 안하신다.
에너지 절약이라는 범국가적인 시책에
발 맞추시는게 아니라 버시는 만큼만 쓰셔야 하니

월남전 다녀오신 이야기며 수십년전에는 이곳이 집이 아닌 길이었고
그 길위에서 노점으로 생계를 꾸리는 분들이 많았고
어찌된 연유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 가게에 비를 그을 지붕을 얹고
바람 막을 간이벽을 세우니 지금처럼 사람들이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처음 이곳을 보았을 때 왜 이곳만 인적이 끊긴 섬처럼
수십년전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는지 조금 알것 같았다는...

지금도 이곳은 용도가 길이다. 그래서 주소도 841번길이고
지금은 이곳이 노점이었을때부터 그 권리가 있는 사람들은
다 타지로 나가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 권리에 대한 세를 주고
남아 있는 것이란다.

이발소 사장님의 바람이 있다면 이곳이 정리가 되어 이쁜 모습으로 바뀌어
지금 보다는 조금 더 따듯한 모습을 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으신것 같더라는...

나는 이곳에서 오랜 기억을 다시 찾아내는 즐거움을 찾았지만
이곳에 계신 분들은 어떤 것을 찾고 계신 것일까?

수십층 고층 아파트에서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면
햇살도 잘 들지 않는 단층 몸 하나 누일 방에서
그나마 다행이라면 곤한 몸 누인 창을 통해 고층 아파트의
반짝이는 불빛이 잘 보이지 않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것 같은
이분들의 바람은 무엇일까?

시원하게 벅벅 긁어가며 감겨준 머리에서
아주 시원한 상쾌함이 폴폴 날아 오르는것과
가식없는 잠깐의 웃음을 보여준 이발소의 풍경을 밀어내며
나오는 골목길엔 여전히 사람의 움직임이 별로 없다.




 


단층 가건물들의 지붕위로 얼기설기 널어진 전선너머로 보이는
고층 아파트 들의 풍경과 극적으로 대비되는 작은 섬같은 공간.

[ 오리로 841번길 ]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고층 아파트를 내려보는 맑은 하늘처럼
기분 좋은 소식이 들려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