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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소통/문화 · 공연

광명의 시인 기형도를 기리며-시길 밟기

 

 

 

 

가을비기 추적추적 내리던 11월

 '기형도 기념 사업회 회원들이 광명의 시인 '기형도'를 기리는 '시길 밟기' 행사를 조촐하게 치렀다.


 

 

 

 


 

애초의 계획은 기형도의 시에 나오는 지명을 따라 걷고 시 낭독을 하며

그의 이야기를 지인과 함께 나누는 내용이다.

비가 오는 관계로 내용이 급 변경되었다.

오리서원에 모여 시낭독과 시 골든벨 등으로 그의 시를 다시 한 번 음미해 보고

시의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였다.


 


 

 

 

오리서원의 배경은 온통 예쁜 단풍들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 계절에 기형도의 시를 낭독하는 시간은 낭만적이리라.



 

 



 


 

따뜻한 온돌방이 비 내리는 가을날에 딱 어울렸다.

책상과 다과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시인 기형도는 1960년 경기도 연평에서 출생하였으며 곧 경기도 소하리로 이사하였다.

1985년 동아일보에 시 '안개' 로 등단하였는데 이 시의 배경이 바로 안양천 둑방이다.





 

 





안개

기형도

 

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중략)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 다닌다.

(하략)


 


 


시길을 걷지 못해 아쉬웠지만 빗소리를 반주로 시낭독을 하는 낭만은 또 다른 기쁨을 선사했다.




 


각자 좋아하는 시 한편씩을 낭독했다. '

기억할 만한 지나침' '노인들' '도시의 눈' '가는 비 온다' '봄날은 간다' '10월' 등.


기형도의 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읽었건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바빴던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광명의 시인 기형도를 기리는 시간은 그를 좋아하고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은유로 채워준다.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사랑 빈집에 갇혔네​

 


 


 


'시를 읽노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어요.

지나칠 만한 것들에게도 그냥 지나침 없이

관심 갖고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을 마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김세경 님)'

'쥐불놀이라는 시로 시극을 해서인지 오늘 이 시를 읽고 싶네요.(윤외숙님)' 라며

소감과 시를 선택한 이유를 전한다.

이 순간들이 또한 기억할 만한 지나침이 될지도 모르겠다. ㅎ ㅎ




 

 


이어 기형도 시 골든벨, 시 패러디, 시 노래 듣기, 함께 부르기 등이 진행되는 동안

빗속의 가을은 더욱 깊어져 갔다.


그리고 기억할 만한 이 날을, 이 순간을 기념촬영으로 기록하였다.



 

 

 


우리는, 아직 진행 중에 있는 기형도 문학관 건립 장소로 이동하였다.

비 내리는 공원이 아직 찾는 이 없어서인지 쓸쓸하기만 하다.



 


 

 


 

 

낙엽들이내려앉은 공원, 기형도의 시비만이 우리 일행을 반겨 주었다.

머잖아 이곳에 문학인들을 비롯한, 그리고 기형도를 기억하고,

그의 시를 좋아하는 이들의 발걸음으로 꽉 채워질 것이다.




 


관계자의 설명을 듣다 보니 앞으로 이곳에 들어설 근사한 문학관이 눈앞에 다가와 있는 듯

상상해 보는 회원들의 가슴이 뛴다.

외지로 떠나곤 했던 문학기행도 이젠 우리 지역에서,

또 외지인들이 우리 광명으로 구름처럼 몰려올 날을 기대해 본다.





 


이곳에 들어설 문학관에 대한 기대 때문일까?

만면에 가득한 웃음이 가을 공원거리에 꽃처럼 피어났다.





 


​비가 내린 관계로 계획에서 살짝 벗어났지만 오히려 더 흡족한 시간이 된것 같다.





 

 




 

 

안녕~~~


저물어가는 가을 날 기형도 시길밟기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우리들의 등 뒤로

붉게 물든 낙엽이 작은 손을 흔든다.

 

 

- 온라인 시민필진 제리(이현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