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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소통

한 여인이 조선을 깨우다 - 광명시민과 함께 하는 창작뮤지컬 눈꽃의 여인 강빈

 

 

 

 

예쁜 단풍잎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풍요로움을 안겨주던 가을이 인사도 없이 훌쩍 떠나버렸습니다.

그 자리에, 별로 반갑지 않은 초겨울이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와 한기 가득 품은 둥지를 틀려고 하네요. 달력이 달랑 한 장만 남아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괜스레 가슴이 시려오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저는 강인한 조선 여인을 감상하는 것으로 시려오는 가슴을 따뜻한 감동으로 잠재우고 왔습니다.

 

 

 

 

 

창작뮤지컬

광명시와 광명시의회 후원으로 이루어진 오늘 공연은 광명시민이라는 자부심 팍팍 느낄 수 있게 무료로 볼 수 있었습니다.

 

 

 

 

 

강빈은 인조의 장자인 소현세자의 비로, 광명시에서 우의정 강석기와 고령 신씨 사이에서 5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고 해요.

이라는 말을 흔하게 사용하면서도 소현세자의 빈인라는 사실을 몰랐던 점이 살짝 부끄럽네요. 

 

강빈은 광명시 노온사동 출신이면서 소현세자의 빈으로 비운의 빈궁으로 역사에 남아있지요.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농사와 무역으로 얻은 수익금을 청나라에 끌려온 조선인들의 환국을 위해 사용했다고 해요. 그 당시 나약한 여인상과는 달리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삶을 살다간 조선 최초의 여성외교관이기도 하지요. 광명시가 낳은 향토 위인이라는 것에 더 의의가 깊었습니다.

 

 

 

 

 

 


창작뮤지컬 "눈꽃의 여인 강빈, 조선을 깨우다." 를 살짝 소개할게요.

 

조선이 청나라와의 전쟁 후, 인조의 장자인 소현세자와 그의 빈 강빈을 청나라에 볼모로 보내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강빈은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 수도인 심양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청나라가 양식을 안 주고 자립하라는 지시에 농장을 경영합니다.

조선의 농법으로 질 좋은 곡식을 생산해 청나라 귀족에게 팔지요.

그 돈으로 청나라에 노예가 된 조선인들을 해방시켜 농장에서 일하게 합니다.

청나라와 조선의 교역 실무를 맡아 청나라에 부족한 곡식과 일용품을 공급하면서 많은 돈을 비축하게 됩니다. 서양의 새로운 문물과 과학 기구, 천주교를 접하게 되는 강빈.

나약한 조선 시대의 여성상과는 달리 진취적이면서 슬기로운 조선 최고의 기개 높은 여인이었습니다.

 

 

 

 

 

뮤지컬 강빈은 청나라에서 강빈의 애국 애족하는 마음과 새로운 문물에 눈을 뜨게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강빈의 공리적이고 애국 애족을 위한 경제 활동에 포커스를 두어 새로운 조선의 여성상을 제

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연 중간에 광명시립농악단의 신명 나는 사물놀이도 볼 수 있었습니다.

 

 

 

 

 

볼모로 풀리게 되면서, 소현세자와 강빈이 서양의 새로운 문물과 과학기구를 들여옵니다.

하지만 김자점의 모략으로 강빈은 폐비가 되어 궁궐에서 쫓겨나고, 소현세자는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강빈 역시 인조를 독살하려 했다는 모함으로 사약을 받아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소현세자와 강빈의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에 여기저기서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연극인분들의 열정적인 연기에 100분이란 공연시간이 짧게 느껴졌을 정도로 감동적인 공연이었습니다. 가족단위로 공연 보러 오신 분들도 꽤 많았습니다.

광명시가 낳은 역사적인 위인 강빈을 보며 아이들에게 귀감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강빈은 선산인 광명시 노온사동에 묻힌 지 73년이 흐른 1718년(숙종 44) 4월에 강빈의 무고함이 판명되었다고 합니다. 위호를 복위, 시호는 민회빈이라 정하였습니다.

숙종은 강빈의 총명함과 덕을 칭송하면서 손수 제문을 지어 민회빈 강빈의 원혼을 위로하며 소현세자의 신주를 함께 묻어 주었다고 합니다. 사적 사실을 살펴보면, 강빈의 묘는 민회원으로 추존되었다가 1903년(고종40)에 다시 영회원으로 개칭되었습니다. 광명시민이 흔히 부르는 애기릉, 아왕릉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하네요.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의 커튼콜이 있었습니다.


<숙종: 이강빈, 김자점: 백성식, 소용: 서정희, 인조: 이종길>

 

공연장 가득 뜨거운 열기와 함께 배우들은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김상헌:박현일, 최씨: 김서현, 청군사, 이서:강진우, 청군사: 노승환>

 

강빈은 작년에도 공연이 있었는데요. 작년엔 강빈의 일대기를 그렸다면, 올해는 어려운 환경 속에도 백성과 함께하는 삶과 개척정신이 드높은 신여성 상, CEO적인 면모를 그렸다고 하네요.

 

 

 

 

 

<강석기: 김남호, 강빈: 강경희, 소현세자: 박재영>

 

연출가 이기석 님은 기개 높은 개척정신으로 애국정신과 조선의 지혜를 청나라에 알린 강빈의 삶을 통해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오류적 사고방식을 지적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삶도 되돌아보자는 의미를 담고싶었다고 해요. 

 

 

 

 

 

광명연극협회장이면서 극단 '한울' 대표이신 오차진 님을 만나자마자 얼른 달려가 몇 마디 여쭈어 보았습니다.

 : 작년에 이어 올해 새롭게 창작해서 다시 공연하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까요?

 

: 광명시가 낳은 역사적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영회원과 강빈에 대해 많은 광명 시민들이 잘 모르고 있다는 게 사실 저로선 넘 아쉬웠습니다.

일회성 공연이 아닌, 매년 강빈에 대한 창작뮤지컬을 공연함으로써 35만 광명시민이 다 함께 봤으면 좋겠다는 사명감으로 연극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광명시의 향토위인임에도 묘를 가서 보면 너무나 열악하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어요.

그래서 후손으로서 제를 지내는 건 어떨까? 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광명의 위인 오리 이원익 주간이 있어 축제를 열지요. 그렇듯 강빈 주간도 있어서 그분의 역사적 업적을 기리며, 축제 한마당을 열었음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 내년에는 어떤 내용으로 공연이 재구성될지  궁금합니다.

 

 : 하고자 하는 계획은 많지만, 예산이 부족해서 맘껏 기획하지 못함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각 고등학교를 순회하거나 수능시험이 끝난 고 3학생들을 초대해 공연한다면, 강빈과 같이 자기 길을 개척해 나가는 광명의 청소년으로 자라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더 나아가 문화적 혜택을 못 누리는 소외계층분들을 찾아가 공연하거나, 초대했으면 하는 바람인데...

예산 부족에서 오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게 제 난관이기도 하구요.

광명시민 35만 명이 다 보는 그 날까지 강빈 공연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유명 뮤지컬의 경우 10년이 넘도록 재공연을 하죠. 배우와 연출에 따라 느낌은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에, 향토위인 강빈 알리기는 저의 평생 과제이기도 합니다.

 

오차진 대표님과의 담소를 나눈 후 되돌아오면서, 문득 강빈과 오차진 대표님이 닮은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명시민의 문화적 혜택을 주기 위해서 광명시와 광명시의회의 후원과 극단 한울 대표님을 포함한 출연 배우들의 재능기부적인 따뜻한 배려가 없었다면, 어쩌면 창작뮤지컬 강빈은 탄생하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강빈은 허구적인 인물이 아닌, 실제 역사적 인물로 조선 시대의 경제활동이 돋보였던 신여성이었다는 점이 더 의의가 깊은 것 같았습니다. 역사를 배우고 있는 광명의 청소년들에게 단체 관람의 기회를 줘 향토 위인을 알게 했음 더 좋겠다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의 공연을 감상하신 분들은 어떤 감동을 가슴에 안고 돌아가셨을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아마도 저처럼 강빈과 같은 역사적 위인이, 광명人이라는 사실에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끼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잔잔하게 퍼져 오는 창작뮤지컬 강빈이 주는 감동의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고 아직도 파동을 일으키며 긴 여운이 남습니다.

 

 

 

 

글·사진 | 구애란(진수맘)

광명시 온라인 시민필진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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