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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소통

한국근대문학관 기형도 '입속의 검은 잎' 기획전에 가다

 

 

 

 

 

지난 10월. 하안문화의집 기형도를 찾아 떠나는 여행(가칭 기형도 해설사과정-이하 기찾떠)”에서 한국근대문학관을 다녀왔다. 한국근대문학관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한국 근대문학관 개관 기념 기형도 입속의 검은 잎기획전이 열리기 때문이었다.

 

 

 

 

 

 

 

일행은 인천역에서 오후 1시에 만났다. '기찾떠' 수강생들은 한 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기형도에 관한 일이라면 어디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수강생 대부분이 기형도기념사업회 회원들이며 직장 휴가를 내거나 반가를 내고 나선 것이다은행잎보다 마음이 먼저 노랗게 물드는 10월의 끝자락에서 기형도 시인을 만나러 가는 길은 사뭇 들뜰 수밖에 없었다인천역에서 조동범 시인(강사)과 기향도(기형도 시인의 누나)님을 만나 근대문학관으로 향했다. 차이나타운을 지나 일제시대 때부터 창고로 사용된 건물을 리모델링했다는 한국근대문관에 도착했다

 

 

 

 

 

문학관 유리 벽에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이라고 쓰인 하얀색 글씨가 투명한 가을 햇살을 받아 눈이 부셨다. 기형도시인은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지점에 살았다. 그 시대를 담아낸 시는 다양한 방법으로 읽히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기형도 시인이 태어난 곳이 연평도이기도 해서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는 박석태(미술비평가)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기형도 시인의 시와 삶을 주제로 4명의 예술작가가 새롭게 해석하고 재탄생시킨 전시회라고 하였다.

 

 

 

 

 

<기형도 시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이종구 작가>

 

 

 

 

 

<청춘 - 리금홍 작가 : 기형도 시집을 읽은 청춘의 사연들을 소환해낸 작품>

 

기형도 시를 문자적 이미지로 회화 작업한 이종구 작가의 작품은 주제나 내용을 구체적 이미지로 표현하지 않고 텍스트를 활용해 언어적 상상력을 느끼도록 하였다.

기형도 시를 읽고 <청춘>이라는 주제에 꽂혀 입 속의 검은 잎을 오브제로 설치한 리금홍 작가. 자신의 책꽂이 어딘가에 있을 시집을 찾아 청춘을 지나온 사람들의 봄날을 더듬는다. 기형도의 시구가 소환해낸 그 시절의 방황과 상처, 서툰 고백과 좌절, 기대와 분노가 선명해진다.

청년으로 남아 있는 시인은 청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다독인다. 봄날의 기억은 가끔 아스피린이 되어주기도 한다고 작품의도를 말했다. <죽은 지인의 사회>2대의 TV와 사운드에 담아낸 차지량 작가는 젊은 세대가 요절한 시인을 바라보는 또 다른 해석 방식을 뮤직비디오로 선보인다. 그리고 시 낭독회를 열어 문학과 미술의 거리 좁히기를 시도했다.

오재우 작가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기형도 시-정거장에서의 충고- 중에서 등 캔버스에 시의 텍스트 배치가 바뀌면서 전혀 다른 맥락에서 하나의 시가 환유를 통해 새로운 의미체계를 만드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박석태 해설사는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은 현대시문학사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 여전히 영향력 있는 시로 기억된다.”며 해설을 마쳤다. 이어서 1층과 2층 근대문학관을 자유롭게 관람하였다. 인천시가 7년 정도 고민 끝에 만든 흔적이 역력히 보였다.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문학작품 전시를 둘러보고 있는 기형도 해설사 수강생들>

 

우리 일행은 길어져 가는 오후 4시의 희망(기형도 시 제목)’ 속으로 걸어 나와 뭔가 미련이 남은 듯 근대문학관 주변을 배회하였다. 인천시와 인천문화재단이 만든 인천아트플랫폼을 돌아보며 창고 분위기의 독특한 갤러리에서 감탄사와 부러움을 자아냈다.

 

 

 

 

 

일행은 헤어지기 아쉬워 그윽한 커피 향을 맡으며 감상 후기를 나누었다. 광명에서 기형도의 시와 문학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확장해 나아가야 할지 우리의 숙제를 안고 거칠어져 가는 도시의 바람 속을 빠져나왔다. 이미 대지의 맛에 익숙해진 나뭇잎들은 내 초라한 위기의 발목 근처로 어지럽게 떨어진다. '내 사랑하는 시월의 숲은 아무 잘못도 없다.’ 기형도 시인의 ‘10이라는 시를 읊조리며...

 

 

 

 

 

기형도시인은 5세부터 29세까지 거의 전 생애를 소하동에서 살았다. 시인은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하동을 배경으로 한 안개라는 시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주로 유년기의 경험과 현대 도시인들의 일상을 개성 있는 시어와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작품 전반에 걸쳐 초현실적 이미지를 추구하면서도 현실을 비판하는 독특한 시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어 문단에서는 끊임없이 조명되고 연구되고 있다. 한국 현대시문학사에서 80년대와 90년대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입 속의 검은 잎은 시집으로는 보기 드물게 매년 1만 부 이상 팔리는 스테디셀러이며 문학청년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또한 입 속의 검은 잎이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로도 번역되어 외국에서도 관심을 받고 있다.

 

 

 

 

글. 사진 | 시민필진 김세경